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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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처증의 종말

2001-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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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락 사회부 차장대우

’의처증’이란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불륜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극도로 심하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의학적으로 ‘망상장애’의 한 종류로 분류되고 있는데 망상장애란 ‘논리적·이성적으로 설득하여도 전혀 변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확신)’을 의미한다.

이같은 망상을 가진 경우에는 주변에서 아무리 설명을 하고 증거를 제시해도 이를 받아 들이지 않으며 도리어 화를 내고 설득하는 사람을 더욱 의심하게 된다. 의처증을 갖게 되면 배우자에 대한 감시하기 위해 수시로 전화를 하게 되는 것은 물론 도청, 미행, 사설탐정 고용등도 하게 되며 배우자에게 부정을 실토하라는 추궁과 함께 폭력으로 이어진다. 또한 어쩌다 잘못 걸려온 전화를 놓고 배우자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형태로든 배우자는 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의처증 증상이 있다고 해서 이것이 다 망상장애는 아니며 정신분열증, 우울증, 알콜중독등 다른 정신질환에서도 생길 수 있어 하루빨리 정확한 진단을 받아 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의처증 환자중에는 어린 시절 정신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은 경우가 많아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약물치료가 병행된다고 소개했다.


9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상가밀집지역에서 박기영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장정웅씨 일가족에게 두정의 권총을 난사해 살해한 뒤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박씨는 이에 앞서 자신의 가게에서 부인 박병순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휴스턴 한인사회를 엄청난 충격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아직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정확한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가족과 주변의 말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사건은 박씨의 ‘의처증’으로 인한 가정불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가족들에 따르면 박씨는 의처증이 심해지면서 부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했고 자신이 거주하는 2층집의 창문과 문등을 모두 막아버릴 정도였으며 가게에서도 부인이 밖에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증세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박씨의 부인은 이혼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박씨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반발을 보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별로 말이 없고 일에만 매달렸다는 박씨. 그같은 근면함으로 한때는 큰 돈을 벌기도 했던 그가 왜 의처증 증상을 보였는지, 그리고 상태가 정신질환으로 규정되는 ‘망상장애’에 이르렀는지도 알 수 없다. 박씨가 지난 98년 아내를 구타해 체포됐을 당시 경찰은 박씨부부에게 전문가의 카운셀링을 받을 것을 권유했었다. 만약 이때 박씨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과 장씨 가정을 이처럼 무참히 짓밟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착잡함을 숨길 수 없다. 박씨의 1남2녀의 자식중 대학에 다니는 장녀(18)는 전액 장학금을 맏고 명문대에 입학한 수재라고 한다. 제때 자신의 병을 다스리지 못한 박씨로 인해 자신의 자녀와 장씨 유가족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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