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형제 싸움의 역사
장남은 보수, 권위주의적, 차남은 진보, 반항아적 성향
정치·과학 혁명 차남이 주도, 부모와 사이 나쁜 장남은 예외
자녀를 길러 본 부모라면 한결같이 느끼는 것중 하나가 똑같은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 성격이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거의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고 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맏과 둘째의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현상이 우연이 아니며 역사적 사건도 형제간의 성격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입증한 책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MIT 교수인 프랭크 솔로웨이가 쓴 ‘천성적 반항아’(Born to Rebel: 팬시온사 간, 654페이지)가 그것이다. 책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창세기 첫 부분에 보면 아담과 이브가 낳은 첫 아들인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형제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후 성경에 등장하는 형제 관계를 보면 친한 경우는 거의 없고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삭의 아들 야곱도 형의 장자권을 속여 뺏는 바람에 에서한테 맞아 죽기전 간신히 도망쳤고 야곱의 아들 요셉도 형제들 앞에서 잘난 척 하다 목숨을 잃기 직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갔다.
이 책의 저자인 솔로웨이에 따르면 형제간 다툼은 창세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보편적 현상이며 이것이 역사 변화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장남은 먼저 태어났다는 기득권을 이용해 부모와 한편이 돼 동생들을 억누르려 하기 때문에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대신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 때문에 학교 공부는 잘 한다. 반면 차남은 이에 반발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하기 때문에 매사에 도전적이며 전인미답의 경지를 찾아 나서는 개척정신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제일 먼저 예를 들고 있는 것은 진화론의 저자인 다윈이다. 다윈은 학창시절 별 볼 일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보다 머리가 뛰어난 생물학자들이 수없이 많았는데도 그가 진화론이란 혁명적 이론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반항아적 기질이 강한 다섯째였다는 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와 동시에 진화론을 발표한 알프레드 월러스도 6명중 다섯째였다. 그후 진화론을 지지한 학자와 반대한 학자의 태어난 순서를 비교해 보면 지지한 쪽은 대부분 둘째 이후고 반대한 쪽은 압도적으로 첫째다. 물론 여기서 첫째라는 것은 첫째로 태어난 것보다 첫째로 자라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셋째로 태어났더라도 먼저 태어난 형제가 모두 어려서 죽으면 사실상 가족 서열상 첫째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윈에 반대한 루이스 아가시즈 같은 학자는 5번째로 태어났지만 손위 형제가 모두 죽어 장남이나 다름없었고 역시 반진화론자인 조지 퀴비에도 두 번째지만 맏형이 먼저 죽어 맏 역할을 했다.
이같은 현상이 진화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요 과학 혁명에 적용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세 자녀중 막내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가 일으킨 코페르니쿠스 혁명도 지지자 대부분은 맏이 아니었으며 반대자의 대부분은 맏이었다.
맏이라고 무조건 혁명적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일찍 죽은 경우, 부모와의 관계가 나쁜 경우는 장남이 오히려 극렬한 혁명분자가 된다.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케플러는 맏이었지만 17살 때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어머니와의 관계도 극히 나빴다. 근대 물리학 혁명의 아버지 뉴턴도 맏이나 유복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친아버지는 얼굴도 보지 못했으며 상당 기간 의붓아버지 집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보수적 장남과 혁명적 차남의 투쟁은 과학 분야뿐 아니라 정치 이론과 실제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근대 서양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프로테스탄트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경우 지지자는 대체로 둘째 이하, 반대자는 주로 맏이었다. 프로테스탄트 혁명을 주도한 쯔빙글리와 캘빈, 틴데일등은 모두 차남이거나 그 아래였다. 프랑스 혁명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혁명의 불씨를 지피는데 앞장선 볼테르는 둘째로 어렸을 때부터 형한테 구박을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 혁명이 가져온 파장이 컸던 이유중 하나도 한 가족안에 형제끼리 의견이 갈려 서로 죽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장남이라도 부모와의 관계가 나쁘면 혁명적이 되는 것은 정치쪽도 마찬가지다. 왕권신수설을 부인하고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국가계약설을 주창한 홉스는 장남임에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출하는 바람에 가진 고생을 다했다. 기요틴과 테러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도 6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다. 혁명 초기에는 반대에 앞장서지만 일단 새 이론과 체제가 기정사실화 하면 오히려 장남이 적극적으로 이를 지지하는 것도 과학이든 정치든 똑같다.
보수파가 큰 아들을 선호하고 진보파가 차남을 좋아한다는 것은 지난 200년간 미 대법원사를 봐도 알 수 있다. 1789년 연방 대법원이 생긴 이래 판사직에 임명된 108명의 인물 프로필을 조사해 보면 장남수가 인구 비례에 비해 상당히 많다. 이같은 현상은 장남이 대체로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보수적인 공화당이 지명하는 판사는 대체로 장남인 반면 민주당 지명 판사는 차남이거나 그 밑이라는 사실이다. 케네디와 존슨이 지명한 판사 4명 모두가 장남이 아니었던 반면 닉슨, 포드, 레이건, 부시가 지명한 판사의 60%는 장남이었다.
물론 모든 혁명적 인물이 부모와 문제가 있는 장남이거나 차남은 아니다. 종교개혁의 장본인 루터나 심리학 혁명의 아버지 프로이트 모두 장남이었으며 부모와의 관계가 나빴다는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반 분야에 나타나는 혁명적 변화에 대한 반응은 몇째로 태어났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이같은 상관관계가 우연의 결과일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주장이 과거에도 제기되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처럼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수집된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입증하려 한 것은 드물다. 이 책은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형제 서열에 관해 지금까지 나온 어떤 책보다 권위 있으며 중요한 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