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 나들이길 십년감수

2001-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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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밤늦게 택시를 타면 안된다"
사업상 한국 나들이가 잦은 50대 초반의 J씨는 얼마전 서울에서 강도를 당했다. 강남지역 술집에서 가볍게 한잔을 하고 강북의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던 것이 화근이었다.

자정이 약간 못미친 시각 술집에서 나온 J씨는 마침 다가온 빈 택시를 잡아탔다. 얼마가지 않아 택시기사는 "같은 방향이면 합승좀 시키겠다"며 양해를 구하는둥 마는둥 차를 멈추고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말쑥한 차림의 청년을 태웠다. 앞자리가 비어있는데도 굳이 뒷자리로 비집고 타는 청년이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강도로 돌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따뜻한 차안에 타고 있자니 술기운이 올라 졸음에 빠졌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J씨는 꿈인 듯 생시인 듯 목덜미에 와닿는 섬뜩한 느낌에 졸음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보니 옆자리에 탔던 합승청년이 시퍼런 날이 선 사시미칼을 자신의 목덜미에 겨누고 있었고 일당인 택시기사도 거들고 나섰다. "말을 안들으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채 순순히 지갑을 내주었다.


다행히 일당은 J씨의 신체에 위해는 가하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캄캄한 곳에 내려놓은뒤 차를 몰아 달아났다. 얼떨결에 당한 나머지 차량 번호판은 외워둘 경황도 없었다. 추위에 떨며 1시간이상을 헤매던 끝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나가던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경찰서에서 J씨는 최근 한국에 이같이 심야 취객을 노린 택시합승강도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고를 받던 경찰관은 그만하기를 천만다행인줄 알라며 "얼마전 60대 미주교포가 택시를 탔다가 둔기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발가벗긴채 한강 고수부지에 버려졌던 적이 있는데 추운날씨에 동상과 폐렴이 겹쳐 며칠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한국경제가 나빠지면서 이같은 유형의 강도사건이 늘고 있으며 특히 한국물정에 어두운 외국인이나 해외동포들의 피해가 많다고 한다. "LA에서도 안당해본 강도를 서울에서 당하고 십년감수했다"는 J씨는 한국을 방문하는 미주한인들이 밤 늦은 시각 택시를 타야할 경우가 생기면 자신과 같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소 요금이 비싸더라도 모범택시나 콜택시를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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