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에 희망을 갖는 이유

2001-01-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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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식<포터랜치>

미국이민 18년만에 처음으로 모든 기록이 담겨있는 수표책과 사용하지 않는 수표 그리고 약간의 현금이 있는 수표책을 잃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에야 분실된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끔 지갑과 수표책을 사무실 서랍에 놓고 온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30마일 떨어진 사무실에 갔다. 서랍을 열어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정말 잃어 버렸구나 하며 걱정을 했다.

그 전날 마지막 들린 곳이 동네 마켓이었으며 그때 입고 간 옷이 잠바였는데 잠바속 안주머니에 수표책을 넣고 난후 날씨가 더워서 잠바를 들고 나온 것을 기억했다. 마켓에서부터 주차장까지 가는 도중에 잃어버렸다는 것을 느꼈으며 도둑을 맞았거나 남에 의해서 도난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갑자기 염려가 엄습해 왔으며 별에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혹시 누가 이것을 줏어서 수표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렇지만 ID를 확인하지 못하면 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일단은 걱정을 가다듬고 다음 일을 생각했다.


일단 은행에 분실신고를 하고 지불정지를 요청했다. 일요일인데도 24시간 고객서비스센터에서는 담당자가 친절하게 신고를 받아주었다. 다행히 수표를 사용한 것이 없음을 알고 감사를 했다. 주운 사람이 사용할 수 없게된 이것을 아무 곳에나 버리지말고 우체통에만 넣어 준다면 하는 것이 한가지 희망이었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사무실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이름을 물어보고 나의 이름을 꼬치꼬치 물어보아 대답을 해주면서도 이상했는데 바로 “당신의 잃어버린 수표책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며칠동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썩 좋지 않았는데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내가 생각한대로 마켓 주차장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찾아준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았으나 사양하면서 내 사무실 주소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하며 자기 사무실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며 전화를 끓었다.

다음날 두툼한 우편물 봉투를 받아 열어보았더니 잃어버렸던 수표책과 사용하지 않은 수표와 놀랍게도 현금 120달러가 함께 있음을 보고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된 원동력이 이렇게 정직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신인 봉투에는 발신자의 이름은 없었으나 회사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어 다행으로 생각했다.

작은 감사의 표시로 꽃집에 전화를 하여 계절에 맞는 아름다운 꽃을 보내달라고 했으며 받는 사람 이름은 ‘정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께’로 대신했다.

얼마후 전에 전화를 한 미국인 여자가 전화를 해 별로 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연말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받았다며 고마워 했다. 이제 내가 이름을 알아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메리’라고 하며 다시는 잃어버리지 말고, 연말을 잘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만난적은 없지만 그 미국인 여자는 마음씨와 같이 얼굴도 아름다운 여자임에 틀림이 없을거라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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