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도 안파는 과년한 딸들
2001-01-12 (금)
흔히들 자녀교육을 위해서 이민 길을 택했다고 한다. 나 자신도 두 딸이 광대하고 기회가 많은 미국에서 부모보다 모든 면에서 한차원 나은 여건을 갖추는 것을 이민생활의 목표로 삼었다. 따라서 항상 딸들에게 이르기를 학력도 사회생활의 기반인 직업도 경제적 부와 건강까지도 아버지, 어머니 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타이르곤 하였다. 세상 여느 부모와 똑같이 어려서는 건강하게 자라도록 주의깊게 보살폈고 학창시절에는 절대로 한눈 팔지말고 공부에만 열중하며 그 흔한 미팅이나 데이트는 절대 금물이라고 했다. 자격을 갖추어서 결혼시기에는 결혼을 하고 알맞은 나이에는 아이를 낳으라며 네가 이 좋은 조건을 갖추어 때가 여물면 백마 탄 멋진 기사가 나타난다고 말해주곤 하였다.
나 자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청소년들이 주일학교와 선교봉사활동, 찬양 등 열심히 활동하면 그 많은 시간을 봉사하면서 언제 공부는 하는지 하고 기우아닌 기우마저 들곤 하였다.
큰딸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도 직장도 얻고 결혼 적령기로 생각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검사인 딸은 오늘도 직장에서 돌아와 도서관에서 직장일에 관련된 판례 등을 찾아 연구하면서 늦게 돌아왔다. 근무시간 외에도 일하면 시간외 수당이라도 받느냐고 내가 어설픈 질문을 하자 맡은 사건에 보다 충실하기 위한 자기자신의 공부라고 하면서 오히려 나를 핀잔한다. 그런 딸이 언제 친구를 만나 사귀어서 결혼에 이를지 내 마음의 조급함은 한결 더해간다.
작은딸은 아버지가 이야기한 백마 탄 기사가 언제 어디쯤 오느냐고 놀리면서 백마는 커녕 빈 마굿간도 보지 못했다고 놀린다. 이제 의대졸업을 앞둔 작은딸에게는 지나가는 말들을 황급히 쫓지말고 가끔 곁눈질이라도 해보면서 결코 무심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웃곤 한다. “남들은 공부 잘 하면서 데이트도 즐기고 좋은 친구 만나 생의 반려자를 찾아 결혼을 잘도 하는데” 하면서 뒤늦은 푸념을 하는 내 자신 부끄러움을 감출 길 없다.
신년에도 바빠서 집에 내려오지 못하는 딸들을 생각해서 오늘도 일터에서 피곤하게 돌아온 아내에게 무엇을 준비해 가자고 하면 성년이 된 딸에게 무엇을 해 주느냐고 설익은 불평을 한다. 그래도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 한국인, 우리 고유의 음식 입맛을 잊지 않도록 파김치나 깻잎장아찌, 창란젓 등을 준비하려고 한국마켓으로 나서려 한다. 우리 입맛을 지킴으로써 서로 같은 뿌리의 민족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과연 나만의 어리석은 욕심일까?
역시 자녀란 재물이나 보물과 같이 어떤 수치로 저울질 할 수 없으며 가치평가도 불가한 인격체로서 주어진 인생의 여로에서 각기 자기 삶을 꾸려가는 독립된 존재임을 새롭게 느끼면서 오늘도 1.5세 두 딸이 부디 보람되고 가치있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