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실패 없는 ‘신년결심’

2001-01-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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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규<소셜워커>

오래 전 서울의 모 정신병원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할 때이다. 한동안 알콜중독자를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관련하여 여기저기 뛰어다닐 기회가 있었다. 그러던 중 술을 끊겠다는 알콜중독자들의 모임인 ‘익명의 단주 친목회(Alcoholics Anonymous)’를 매주 참관하면서 아주 귀한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미국의 알콜중독자모임(A.A.)의 형식과 규칙을 따라 매번 모임의 시작과 끝에 항상 같은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이 기도문은 처음 만난 그후로 지난 10년간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한결같이 나 자신의 기도문이 되어주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내게 허락하소서.

심각한 중독의 문제를 앞에 놓고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며, 동시에 변화를 위해 도전해야할 영역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다짐의 소리라 하겠다.


해가 바뀌어 다시 새로운 시작을 설계하는 정월에 이 기도문이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것은, 중독같이 우리를 잡아매고 있는 건강치 못한 습관들과 생활방식, 집착, 그리고 대인관계에 있어 어떤 변화를 희망하는 우리에게도 같은 평화와 용기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가장 보편적인 미국인의 신년결심은 첫째, 체중감량 둘째, 담배끊기 그리고 관계개선, 수입증대, 새로운 취미활동의 시작 순이라고 한다. 또한 24%만이 구체적인 신년결심을 세우는데 그중 40%는 이를 성취하는데 실패한다고 한다. 다양한 실패의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한가지는, 마치 또 한해의 실패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매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그리고 애정과 지속적 동기부여가 결핍된 결심내용 자체에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고 지루한 늘 같은 신년결심.

새해를 기념하는 것은 언제든지 지난해를 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새로 시작되는 미래와 더불어 주어지는 또 다른 기회를 축하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날의 실패나 성공에 집착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신년결심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년결심을 세울 때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두는 것이 보다 긍정적이며 지속적 욕구와 기쁨, 에너지를 공급받게 한다.

특별히 배우자나 자녀와 같이 자신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둔 결심은 자기중심적 결심보다 강한 애정과 동기를 갖게 한다. 따라서 올해 신년결심의 한가지 대안으로, 가족관계와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둔 신년결심을 제안하고 싶다.

어차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집착한 죄책감이나 걱정을 버리고, 즐거운 기대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자. "더 많이 웃자, 사진첩을 같이 정리하자, 운동을 같이하자, 책을 같이 읽자, 자녀들에게 좀더 참을성을 가지자, 목소리를 낮추자, 포옹을 더 자주하자, 가족휴가를 갖자, 가족외식을 함께 하자, 고맙다는 말을 자주하자, 더 많이 칭찬하자" 등 여건과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더 창의로울 수 있다. 현실적 여건을 인정하여 실현 가능한 빈도수를 정하고 필요시 언제고 다시 조정할 수 있다.

"해야한다" 보다는 "하고싶다"가 스트레스 적고 긍정적인 문구로 적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을 수 있으며, 한번에 하나씩만 시도할 수 있다. 한동안 잊고 지낼 수도 있지만 생각날 때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단 한번을 시행했다 하더라도 해가 지나 연말에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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