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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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예언력’ 삶을 좌우한다

2001-01-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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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알파벳(Alphabet)역사는 상당히 오래다. 4,000년전 고대 이집트에서 발명돼 B.C. 1,800께에는 이미 상당히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알파벳이 새겨진 당시의 유물이 서나일강 유역에서 가나안지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오랜 역사의 알파벳은 가장 위대한 인류 유산의 하나로 꼽힌다. 정보의 민주화와 함께 인류의 문명, 정신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 때문이다.

고대 에집트에서 사용된 문자는 사물과 개념 하나 하나를 나타내는 수천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상형문자였다. 문자해득은 따라서 오랜 기간 교육을 받은 서기관 등 극소수 특수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배우기 쉬운 알파벳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정보유통의 민주화가 이루어져 인간 문명사는 이때부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알파벳의 발명과 보급은 민주주의 정신의 발아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가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고대 민주주의 발상지 그리스, 또 근대 민주주의의 요람인 영국등이 모두 알파벳 문화권이고 반대로 비 알파벳 문화권에서는 민주주의가 별로 발달되지 못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는 그저 우연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가설은 그렇다고 치고 알파벳 이야기는 한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일상은 온통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다. 간단한 의사는 물론 복잡한 아이디어도 모두 입을 통해 표현되고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기록된다. 이렇게 표현된 말이 영상을 만들어내고 결국은 실제가 된다. 말은 그러므로 때로 그 자체로 주술과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즉위시의 일화다. "불과 3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위에 오르게 된 부의, 즉 선통제는 즉위식날 울기만 했다. 보다 못한 황실의 어른들이 어린 황제를 달래며 ‘곧 끝난다, 곧 끝난다’(快了快了)고 속삭였다. 그러자 선통제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4년후 청조는 멸망했다. 말대로 곧 끝난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소년이 점장이를 만났다. 이 점장이는 기분 나쁜 예언을 했다. 42세이상 살지 못한다는 예언이다. 이 말은 내내 소년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자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된 후 어느날 소년시대에 만난 점장이의 말이 또 다시 살아났다. 그는 결국 그 말의 올무에 걸려 42세의 나이에 죽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과 관련해 나온 말이다.

말이 지니고 있는 이같은 파워에 일찌기 주목한 사람의 하나가 랠프 왈도 에머슨이다. 그는 "말은 능력이다. 말은 설득하고 강요한다"는 정의를 내리면서 말이 지닌 스스로의 예언력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말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예언을 성취해 나간다는 것이다. "장래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반복해서 말한다. 그러다보면 그것을 믿게되고 결국은 성취된다" 정반대의 경우도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다.

말의 예언력은 과학적 실험으로도 증명된다. 즉 인간의 두뇌는 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일단 말을 하게되면 두뇌가 그것을 알아듣고 말하는 것에 따라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즉 신경언어 프로그래밍(Neuro-Linguistic Program)운동이라는 것으로 다시 말해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 생각과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다는 것이다.

새해다. 새 세기의 시작이다. 그런데도 들리는 것이 온통 혼탁한 말들이다. ‘광란의 살인극’ ‘밀입국 한인 급증’ 온통 음울한 말들 뿐이다. 미국 뉴스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8년전 클린턴 대통령이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사람을 ‘불법 체류자 불법고용 죄인’으로 몰아 사퇴케 한 장본인, 린다 차베즈 노동장관 지명자가 똑 같은 구설수에 몰려 사퇴했다. 8년전 했던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 온 셈이다. 참으로 묘하다. 한국서 들려오는 말들은 더 섬득하다. ‘선거자금 일제 수사’ ‘안기부 리스트 공개파문’ 지겹고 짜증나는 말들의 주기성 되풀이다. 상생의 정치는 실종된지 오래다. 오직 들리느니 욕설이고 고함이다. 거기에 살기까지 번득이는 느낌이다.

’덕담으로 풀어가는 정치’ ‘서로를 품어주는 삶’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 형통한 삶을, 소망이 있는 장래를 약속하는 말들이 새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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