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처녀의 심정

2001-01-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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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미

노처녀인 내겐 일년중 가족 친지가 다함께 모이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차례를 지내는 정월초하루가 가장 부담스럽다. 일년 내내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도 없던 그들이 선심쓰듯 던지는 말인 “너는 시집 안가니?” 소리가 듣기 싫은 까닭이다. 언제부턴가 그런 자리가 불편해 슬슬 피하는 못된 버릇까지 생겼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내게 물어본다. “도대체 결혼은 안한거예요 아니면 못한거예요?” “둘다요”라고 대답해준다.

그러나 매년 그렇게 한해가 지날 때마다 가장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당사자인 내가 아닌 바로 나의 어머니다.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알량한 나의 자존심은 어머니와 맞선다. 남녀 인연이라는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나는 지나치게 과분한 상대도 원치 않지만 바보 온달을 키울 수 있는 평강공주 기질은 더더욱 없다.


결혼했다 얼마 살지도 못하고 이혼해서 다시 친정으로 들어오는 딸들도 있으니 거기에 위안 삼으시라고 말했다가 “너 언제 철들래?”하는 못마땅한 표정만 돌려 받았다.

남들은 어머니 나이에 손자 재롱떠는 재미로 산다지만 아직 결혼도 못하고 있으니 죄인 아닌 죄인이 됐다. 하지만 독신주의자가 아닌 이상 또 혼자살 운명이 아니면 언젠가는 나도 짝을 만나겠지 하는 나의 느긋한 생각과 태도가 뭐 잘못된걸까?

그런데 결혼을 한다해도 솔직히 겁이 난다. 하도 밥먹듯이 이혼을 하는 세상이니까. 옛날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못보고 결혼했어도 부모가 정해주는 짝 만나서 잘만 살았다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던가. 설마 요즘에도 예전의 케케묵은 주례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진 않겠지. “신라신부는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며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라”는 주례사는 요즘 세상에 맞지 않는다. “신라신부는 같이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서로 너무 기대지도 말고 나중에 상처주거나 흠잡힐 말과 행동은 되도록 삼가면서 살라”고 하는게 요즘 세대에 맞는 보다 현실적인 주례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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