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를 먹는다는 것

2001-01-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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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창묵 <워싱턴주 수석경제자문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늙어 가는 과정을 꼬박꼬박 확인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이의 상징이 얼굴 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검버섯, 주름살, 탄력 잃은 뺨, 처진 눈꺼풀, 눈 아래 생긴 주머니… 자신에게 처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불행의 형태가 제각각이듯 노년의 신호는 사람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주름살이 많아지는 사람, 비만증이 생기는 사람, 머리가 세는 사람, 말을 많이하는 사람, 눈부터 흐려지는 사람, 목이 유난히 늘어지는 사람등 각양각색이다.

“어머, 내 눈밑 좀 봐요!” 아내가 화장대 앞에서 푸념했을 때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어머” “아니...” 아내는 계속 외마디 소리를 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투다. 내가 꿈쩍 않자 숨이라도 넘어갈듯 “와보라니까요!”라고 호통친다.


거울 바로 위에 200왓트도 넘는 전등이 달려 있으면 나도 싫다. 촛불 정도의 밝기든지, 아니면 뒤쪽에서 비추는 것이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세대에게는 편하다. 정면에서 서치라이트로 비춰대면 어린애 얼굴이라도 나이든 자국을 감출 재간이 없다. 현미경으로 나이테를 찾아대는 꼴이다. 오이가 소박이 말고도 미용재료로 귀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도 눈밑 주머니가 유난히 돋보이면서부터다.

아내의 눈밑 주머니가 한동안 집안의 가장 중요한 화젯거리가 된다. 나이와 함께 오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고지식한 내 해석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 그런데 자기만 유난하다며 투정이다. 아마 유전자 탓일 거라는 나의 생물학적 설명은 위로는 커녕 자포자기하라는 뜻으로 들려 화를 더 나게 만드는 모양이다. 급기야는 불똥이 엉뚱하게 튄다. 반 이상이 남편인 내 탓이고 나머지 반은 아이들 탓이라며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남자도 그렇지만 특히 여자는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적게 생각한다. 심리적 나이와 호적상 나이의 괴리는 나이에 동그라미가 붙을 때마다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39세와 40세, 49세와 50세의 심리적 차이는 1년이 아니다.

사람의 면모를 판단할 때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도 실수를 범하기 쉬운데 페이스가 빨라진 요즘엔 첫 인상만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잦다. 성형기술과 화장술이 발달한 요즘, 첫인상으로 내린 판단이 오판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커졌으나 그 의존도는 과거보다 훨씬 늘어났다. 첫인상 분석도 점점 세분화돼 주부타입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직업여성 타입도 수십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첫 인상으로 나이와 출신 정도를 짐작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이같은 시대 조류에 민감한 부류가 있다. 미국 내에는 5천명이 넘는 성형외과 의사가 있고 대다수는 뉴욕과 LA등 벌이가 좋은 대도시에 몰려 있다고 한다. 성형수술 상담가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날 정도이다. 이들 상담가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학벌, 경험, 배경, 전문 신체부위 등 자료를 수집해놓고 재생미녀 후보들의 입맛에 따라 연결시켜준다고 한다.

그러나 얼굴만 보고 인격까지 판단하려든다면 표지만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하려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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