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2001-01-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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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주필)

네팔에 처음 가는 사람들은 다섯 번 놀란다.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짐을 찾아 거리로 나올라치면 괴청년 4~5명이 달려와 여행객의 짐을 덥썩 잡는다. 날치기가 아닌가 싶어 겁에 질리지만 그게 아니라 포터들이 경쟁적으로 손님의 짐을 들어 주려는 서비스 경쟁이다. 손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짐을 빼앗아 가는 포터의 얼굴 표정은 의기양양하다. 걸작인 것은 그 짐 위에 한두명의 친구가 손만 얹은 채 따라가며 돕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다. 자기도 짐을 거들었으니 팁을 달라고 사정한다. “당신들끼리 알아서 나눠 가지라”며 1달러를 주면 이번에는 짐을 들고 온 포터와 손만 얹고 온 친구 사이에 옥타브가 높은 대화가 오간다. “나도 옆에서 도와 주었으니 팁을 받아야겠다”“네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 이건 나 혼자만 들고 온 짐이기 때문에 팁은 내 꺼다.” 손짓 몸짓으로 짐작컨대 대개 그런 대화 내용인 것 같다.

두 번째 놀라는 것은 시내가 너무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점이다. 옛날 청계촌 빈민촌을 연상케 하는 뒷골목 풍경에 집집마다 빨래가 널려 있는데 어둠침침하기까지 해 네팔국민들이 얼마나 가난한가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국민소득이 225달러라니 사는 모습이 제대로 일수가 없다.

세 번째는 수도라는 카트만두의 길이 한국의 농촌 길보다도 못한 점이다. 대로가 없고 아스팔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자동차가 주택가를 지나는 것인지 번화가를 지나는 것인지 조차 분명치 않다.


네 번째는 시내에 넘치는 사람의 물결이다. 이곳에 가도 사람, 저곳에 가도 사람들이다. 몸이 부딪쳐 길을 걸어가기가 불편할 지경이다.

다섯 번째는 이들의 한국에 대한 동경이다. 네팔 서민들의 꿈은 한국에 가서 취업하는 것이다. 한 2년 동안 눈 딱 감고 고생하면 집도 사고, 장가도 가고, 가게도 차린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한국으로 밀입국 할 수 있나 하는 것이 네팔 노동자들의 숙제다.

외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남의 나라를 배우는 기회도 되지만 자기 자신을 다시 처다 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숲을 보려면 산을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한국의 좌표와 전체 그림을 보려면 밖에서 한국을 봐야 뚜렷해진다. 네팔을 둘러 보고 나면 한국이 얼마나 잘 살고 사치한 나라인가 실감이 난다.

한국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동남아에서는 ‘잘 사는 나라’에 꼽힌다.

그런데 네팔인들이 동경하는 ‘잘 사는 나라 한국’에 와서 들여다보면 한국인들은 고민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구조조정 때문에 걱정, 사업이 부진해 걱정, 정년 퇴직 후 할 일이 없어 걱정, 온통 걱정 섞인 소리뿐이다.

네팔 사람들은 못 살지만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에 위화감도 없고 하루 50센트면 최소한의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 세상만사 부처님의 뜻이고 아옹다옹한다고 무슨 일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식의 생활자세다. 이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계급제도 의식 에 젖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타고 난 팔자로 여긴다.

외국 여행을 해 보면 두 나라가 서로 인접해 있는데도 한 쪽은 잘 살고 한 쪽은 못 산다. 네팔의 카트만두에 있다가 태국의 방콕에 와 보면 별천지처럼 느껴진다.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차이만 하다. 알프스 산을 가운데 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빈부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 하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잘 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는 무엇인가. 무엇이 한쪽을 부유하게 하고 무엇이 한쪽을 빈곤하게 만들었는가. 국가의 빈부 차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교육수준이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빈부 차이도 교육수준의 차이와 정비례한다. 한국과 네팔의 차이도 교육수준의 차이와 직결되어 있음을 카트만두를 여행해 보면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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