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난민 도와준 것도 죄인가

2001-01-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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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존 펀드, 월스트릿저널 기고)

‘보크’라는 단어가 동사가 된 것은 1987년이다. 레이건이 연방대법관으로 보크를 지명하자 테드 케네디를 비롯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인준을 부결시킨 것이다. 그 때부터 보크라는 단어는 ‘전력을 다해 인준을 거부하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민주당은 이번에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 게일 노턴 내무, 린다 차베즈 노동장관 지명자를 보크 시키려고 벼르고 있다. 차베스의 보킹은 지난 주말 시작됐다. 차베스 케이스는 얼핏 보면 1993년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소셜 시큐리티 택스를 내지 않아 법무 장관 인준을 받지 못한 조이 베어드와 비슷하다. 그 때 많은 상원의원들은 베어드가 이로 인해 장관 자격이 없다고 느꼈지만 월 스트릿 저널은 의견을 달리 했다.

불법체류자 고용은 그의 인준을 막기 위한 구실이고 실제 이유는 변호사 협회가 그의 법조 개혁에 반대했고 노조 쪽에서는 베어드가 에트나 보험사를 위해 일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현직에 있는 리노가 법무장관이 됐다.


지금 차베스는 10년전 과테말라 출신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마르타 메르카도는 당시 남자친구한테 구타당하고 우울증에 빠진 상태였다. 얼마 후 메르카도는 일자리를 구해 차베스를 떠났다. 부시팀 대변인에 따르면 메르카도는 당시 차베스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으며 부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메르카도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피고용인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제시 잭슨 목사는 이를 강제노동에 비유하고 있다.

차베스는 정부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운 진정한 온정적 보수주의자다. 그녀는 대학 시절 덴버에서 장애자 아동 교육을 가르쳤으며 70년대 워싱턴의 흑인 동네에서 살 때 2명의 베트남계 형제를 자기 집에서 재우며 수주동안 돌봐준 적도 있다. 90년대초 푸에르토 리코 출신 여성의 자녀를 자기 집에 데려다 기르고 97년부터 가톨릭 학교 수업료를 내주기도 했다.

차베스와 메르카도와의 관계는 불법체류자 착취가 아니라 자선에 가깝다. 그녀의 인준에 반대하는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10년전 과테말라 사태에 관해 뭐라고 발언했는지 살펴 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당시 과테말라는 30년에 걸친 내전으로 총인구 900만명중 10만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었다. 그런 나라로 메르카도를 돌려보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90년대 내내 리버럴들은 중남미의 난민들을 교회가 보호하는 피난처 운동을 지지해 왔다. 이제 와서 난민 보호를 위해 솔선 수범한 차베스를 물고늘어지는 것은 자가당착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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