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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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는 배가 아프다

2001-01-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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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칼럼

▶ 박덕만 (편집위원)

"LA팬들이여 우리 애꾸눈 해적떼가 그립지 않은가"

지난 95시즌 오클랜드로 떠나간 풋볼팀 레이더스가 지난주말 홈구장 네트웍 어소셰이츠 콜러시엄에서 열린 NFL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마이애미 돌핀스를 27대0으로 완파하고 롬바디 트로피를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레이더스는 다음주 볼티모어 레이븐스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하면 오는28일 탬파에서 열리는 수퍼보울 IIIXV에 진출하게 된다. 83년이후 17년만의 경사다.

지난60년 오클랜드를 본거지로 창단된 레이더스는 82년 LA로 이전해온 뒤 94년까지 LA메모리얼 콜러시엄을 홈구장으로 삼았던 팀이다. ‘블랙 & 실버’ 애꾸눈 해적 로고 그대로 거칠고 과격한 망나니 이미지의 레이더스는 LA 선참팀 램스보다도 더 남가주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극성팬들의 난동으로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


레이더스가 수퍼보울에 진출한다니 기분이 묘하다. 마치 ‘나 싫다고 떠난 옛애인이 새남자 만나 깨가 쏟아지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다. 지난 시즌 램스가 롬바디 트로피를 따다 세인트루이스에 바치는 것을 볼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올시즌 레이더스가 잘나가는 모습은 왜 이리 지켜보기 거북한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미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스포츠라는 NFL팀 하나 갖지 못한 LA가 한심하다. 레이더스와 램스가 떠난지 도대체 몇해인가.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위스컨신의 촌동네 그린베이도 챔피언 풋볼팀을 갖고 있는데 환태평양시대의 중심에 미국제2위의 도시라는 LA가 풋볼팀 하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이곳이 싫다는 팀들 떠나 보낸 것 까지는 좋다고 치자. 신생팀 유치 경쟁에서 한물간 텍사스 도시 휴스턴에 지고도 가슴아파 할줄 모르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LA에 살면서 스포츠 구경에나 매달려 있는 꽁생원이 어디 있느냐"고 변명한다. 사철 날씨가 좋고 프리웨이가 사통팔달 잘 뚫려있는 남가주에 사노라면 다른 즐길거리가 많기 때문에 스포츠에 빠지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리부에서 라호야에 이르는 해변에서 팔등신의 ‘캘리포니아 걸’들이 유혹하고 있고 헐리웃에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등 놀러갈 곳도 많다. 그뿐인가 1시간여만 차를타고 나가면 스키장도 지천이다.

한국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골프도 일년 열두달 즐길 수 있다. 굳이 프라이빗클럽이 아니더라도 값싼 그린피에 시설좋은 골프장도 도처에 널려있다. 기자부터도 누가 나서서 "박찬호 야구보러 갈래, 골프치러 갈래"하고 물어오면 골프치러 가겠다고 나설 것이 틀림없다.

LA 프로스포츠 구단중 다저스와 레이커스만이 그런대로 팬들의 성원을 얻고 있을뿐 야구의 에인절스, 농구의 클리퍼스, 하키의 킹스와 마이티덕스 등 나머지 팀들은 모두 팬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다.
"관심이 없는 것이 팬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맞는 말이다. 다저스와 레이커스를 제외하고는 챔피온 트로피를 안겨준 팀이 없다. 마이티덕스의 경우를 보면 알수있다. 팬들은 창단이후 몇 년동안 전경기 매진이라는 성원을 마이티덕스에 보내주었지만 매년 바닥만 헤매다보니 팬들의 열기도 식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다저스팬들이 홈경기때 트래픽을 핑계삼아 3이닝이 지나서까지 입장하고 6이닝이 끝나면 퇴장하기 시작한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다저스도 8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10여년째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돌아오는 일요일 레이더스와 레이븐스의 AFC챔피언십 경기중계를 보면서 레이더스가 승리한뒤 내친 김에 수퍼보울까지 제패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형편없이 박살 나는 것을 보며 고소해 하고싶은 마음중 어느쪽이 우세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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