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2001-01-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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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처음 내놓았을 때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다.
“상대성이란게 무엇입니까?”
아인슈타인이 대답했다.
“아름다운 여자와는 두시간 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2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화덕 위에는 2분만 앉아있어도 두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지요. 그게 바로 상대성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1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우리 앞에 놓였다. 시간의 가장 큰 특성은 공평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태어나면서 시간을 부여받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다. 반면 시간의 또다른 중요한 특성은 상대성이다.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흐르는 속도가 다양하게 다른 것이 시간이다. 가장 이상적이기는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하는’ 두시간이 2분같은 시간으로 채워지는 것이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그런 꿈결같은 시간의 경험은 많지 않다. 하루하루는 ‘화덕위에 앉은’ 2분같이 답답하고 지루한데 지나고 보면 한일도 없이 몇달씩 뭉터기로 지나가 버려 허망하다는 것이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불평이다.

얼마전 중년의 주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간’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세탁기, 전자 레인지도 없었는 데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여유롭게 살았던 것같아요. 문명의 이기를 모두 갖춘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시간이 없어 허덕거리는 걸까요. 시간에 끌려 다니는 것 같아요”


시간을 절약해주는 세탁기, 청소기등 온갖 가사도구가 발명된 것까지는 좋은데 대신 그 도구들을 장만할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하니 결국은 더 시간이 없어 쩔쩔 매게 되고 말았다.
한 사나이가 주위도 둘러보지 않고 너무 급히 길을 가기에 현자가 불러세워 물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그 사나이의 대답은 “생활을 쫓아가려고 그럽니다”였다. 생활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이 거꾸로 생활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된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인간 최초의 위대한 발명은 시간이라고 한다. 시간을 년, 월 … 시, 분, 초의 단위별로 구획지음으로써 인간은 자연순환의 단조로움에서 해방되고 문명의 발달이 가능해졌다. 인간이 시간을 컨트롤하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산업이 발달하면서 분단위,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다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거꾸로 시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시간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삶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원시시대 남성들의 노동량을 요즘 시간으로 환산하면 주당 15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경문화로 접어들자 쟁기 끄는 동물을 먹이고 돌보는 시간이 추가돼 주당 노동시간이 25-30시간으로 늘었다. 멋진 집을 장만하고 집 페이먼트 때문에 집에서 편안히 앉아 즐길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 주위에서 보면 열심히 일하면서도 여전히 즐길 것을 다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다. 상대성의 원리를 잘 이용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두시간이 2분같은 삶- 바로 즐겁게 사는 삶이다. 하는 일이 보람이 있고 의미있다고 느끼면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같은 양의 일을 해도 덜 피곤한 법이다. 아울러 가끔씩 시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의 뇌에서 시계역할을 하는 것은 좌뇌이고 우뇌는 시간과 무관한 직관적 주관적 사고를 관장한다고 한다. 음악, 미술등 예술에 대한 이해가 우뇌의 영역이다. 미술관에 가거나 음악감상을 하고 나면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 머리가 산뜻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같다.

시간은 돈으로 살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삶이란 곧 시간이 있다는 것이고 더 이상 시간이 없는 상태가 죽음이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시간에 끌려 다니느라 인생의 기쁨을 상실해서는 안되겠다. 새해에는 시간의 주인이 되어서 시간을 즐기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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