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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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에 싸인 FRB

2001-01-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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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월 스트릿은 세계 금융의 대명사다. 초기 이민자들이 맨해튼 섬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은 장벽이 있던 곳이어서 월 스트릿이란 이름이 붙여졌지만 지금은 벽은 흔적도 없고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진짜 뉴욕 금융계의 실세는 인근 리버티 스트릿에 자리잡고 있다. 겉으로 보면 좁은 골목속의 고색창연한 건물에 불과하지만 그 지하 5층 깊숙이는 전 세계 은행 금괴의 1/3에 해당하는 3억 온스의 금덩어리가 잠자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 은행이 바로 그곳이다. 이 은행에는 이외에도 세계 각국 정부 및 기관이 맡긴 7,000억달러 상당의 채권과 예금증서가 보관돼 있다. 나라끼리 대금 결제를 할 때는 금괴나 재무 서류를 주고받을 필요 없이 양쪽 모두 뉴욕 연방은행에 전화 한 통만 하면 된다.

이처럼 전 세계인이 앞다퉈 이곳에 재산을 맡기는 것은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는 신뢰 때문이다. 지하 금괴 창고로 가는 길목마다 철저한 보안 장치가 돼 있을 뿐 아니라 창고를 여는 철문은 원자폭탄이 터져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며 일정 시간밖에 열리지 않아 한번 잘못 갇히면 다음날까지 나올 수 없다.


뉴욕 연방은행은 연방은행중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12개 연방 은행의 하나에 불과하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본부는 워싱턴 DC에 자리잡고 있다. 금리와 통화량등 미국의 중요 금융 정책은 이사회 의장을 포함한 7명의 이사와 12개 은행 총재중 5명으로 이뤄진 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의해 결정된다. 형식적으로는 다수결이지만 의장의 뜻을 따르는 것이 관례다. 의장은 연방은행 총재 임명 거부권을 갖고 있고 이사 임명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누구도 의장에 반대하기 힘들다.

FRB 의장은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중 드물게 정책 결정시 정치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2차대전후 미국식을 따라 만들어진 독일 정도가 예외다. FRB는 또 어떤 정부 기관보다 비밀에 쌓인 곳이다. 회의 진행에 사용된 각종 보고서는 5년이 지난 다음에야 공개되며 철저한 비밀 보장을 위해 아예 회의록은 만들지 조차 않는다. CIA도 이보다는 훨씬 공개적이다.

FRB 건물이 신전 양식을 본 딴 것이나 의사 진행을 비밀에 붙인 것, 의사 결정의 독립성 보장은 모두 일반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다. 앨런 그린스팬 의장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경제를 이끌어 온 것도 신탁에 버금가는 그에 대한 미국과 세계 투자가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지고 보면 돈 자체도 그 가치에 대한 신뢰 없이는 휴지에 불과하다.

FRB는 3일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폭도 0.5% 포인트 선으로 대폭이다. FRB가 이처럼 예고 없이 크게 금리를 내린 것은 미국 경기가 얼마나 급속도로 식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과연 그린스팬이 이번에도 미국 경제를 불황의 늪에 빠뜨리지 않고 제대로 인도해 나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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