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직도 한국인은 이해할수가 없어"

2001-01-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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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오먼 칼럼

▶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한글학교 교사 사은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아내가 초청된 모임이었는데 그 날 초청된 연사가 70년대에 한국에서 평화 봉사단원이었던 친구이기에 거의 30년 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도 만나 볼 겸 오클랜드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였다.

식당 입구에서 한국 속담을 영어로 번역한 책을 사인하며 책을 팔고있는 친구를 금방 알아 볼 수가 있었다. 댄 만큼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외국인도 드물었다. 무엇이든지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던 20대의 청년이었던 우리들이 중년이 되어 아직도 한국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다시 만나게된 것을 신기해하며 기뻐하였다.

식사가 시작되자, 아내와 나, 그리고 댄은 무대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 음식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옛날로 돌아가서 옛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변모한 한국 이야기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식사가 끝나자, 오락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한국사람이 모이는 곳에 노래가 빠지는 법이 없듯이 댄이 일어나서 간단하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 다음, 유행가를 구성지게 불렀다. 옛적에 댄이 목젖을 떨어가면서 청승맞을 정도로 구슬프게 "막걸리 노래" 를 부르면 동료 봉사단원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댄이 꼭 한국 유행가 가수처럼 얼굴에 인상까지 써가면서 불렀기에 인기가 대단하였다. 술좌석에서 그가 노래를 부를 적엔 한국사람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미국사람이 어쩌면 저렇게도 한국 노래를 잘하느냐고 모두들 감탄하곤 하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잘 불렀다.

댄의 노래가 끝나고, 그룹으로 선생들이 나와서 장기 자랑을 하였다. 어떤 그룹은 팬토마임을 하기도 하고, 연극을 하기도 하고, 노래와 춤을 추기도 하였다. 노래가사 속에 "예수", “할렐루야" 하는 단어들이 간간이 섞인 것을 보아 많은 여선생들이 크리스천인 것 같았다.

그룹 장기 자랑 프로그램이 끝나고 가라오케로 바뀌었다. 가라오케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가라오케를 치통을 앓는 것만큼 즐기는 편이다. 음악 감상을 좋아하지만 가라오케는 싫어한다. 만약에 누가 나에게 어떤 것이 지옥 같은 형벌이냐고 묻는다면, 가라오케 바에서 영원히 그칠지 않는 가라오케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라고 말 할 것이다. 첫째, 노래 가사를 모르기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이유도 있고, 곡도 생소할뿐더러 똑같은 가락을 수 십 번 반복하는 무료함도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마이크로폰을 잡고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를 때 귀가 따가워도 참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라오케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중간에 사회자가 관중들에게 누구든지 나와서 농담을 하라고 권유하였다. 점잖게 생긴 나이든 남자가 웃으면서 마이크로폰을 잡더니, 장소와 때에 맞지 않는 섹스에 관한 농담을 천연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말이 별로 유창하지 못하지만 그가 하는 농담을 대강 짐작할 수가 있었다. 과장된 제스처와 "지퍼", "캐딜락", "차고"와 같은 단어들이 섞인 농담이었는데 설마 하면서 주위를 살피었다. 아내는 얼굴을 붉히면서 눈을 내리깔고 웃음을 참고 있었고, 옆에 있는 댄도 평소보다 더 빨간 얼굴을 하며 킬킬 웃고 있었다.

다음 가라오케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댄에게 말했다. "여선생들 앞에서, 이것 너무 야하지 않니?" 여선생들이 몇 분전에 부른 노래들이 "예수", “할렐루야" 하는 종교적인 노래였기에 그들의 딱한 입장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관중들도 야한 농담에 별로 관계치 않고 함께 웃고 있었다. 미국사람들에게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조크였는데 아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30년을 넘게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인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한숨을 쉬며 말하는 댄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 역시 한국사람을 알 것 같다가도 도무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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