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랑머리

2001-01-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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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향민<영어음성학자>

몇년전 화제를 뿌렸던 ‘노랑머리’라는 한국영화가 있다. 그후로 한국에는 노란색 머리가 유행을 하고 있다. 전체를 노란색으로 바꾼 경우도 있고 일부만 노란색을 바꾼 경우도 있다. 빨간색 머리도 있다. 순수한 검은 머리의 청소년들이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검은 머리를 유지하는 청소년들은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또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하니 기성세대들에게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급기야 당국에서는 더 이상 규제만을 고집할 수 없어 고등학교에서 노란색 머리 허용을 검토한다고 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조상이 물려준 몸의 일부를 훼손하는 불경을 저지를 수 없다며 단발령을 거부하던 우리 조상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공연히 염려스럽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한 기독교교파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가 있다. 놀라울 정도로 규율이 엄하다. 물론 교복을 착용하여야 하며 귀걸이등의 액서세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외에 모든 규칙이 미국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이 학교에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한 한 한인 학생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 어떻게 검은머리를 노랑머리로 바꾼 행동이 허용되는지가 궁금하여 질문을 하였다. 대답은 예상을 훨씬 비껴 나갔다. 과연 여러인종이 더불어 살아가는 미국적인 다양성을 나타낸 사고였다. 노란색머리는 자연스런 모발색깔이라는 것이었다. 머리색에 대한 규칙은 단순히 자연스런 모발색깔로 한정하고 있지 인종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동양인 학생이 노랑머리를 하는 것도 백인학생이 검은머리를 하는 것도 모두 교칙 위반이 아니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는 말이있다. 한국인의 머리색은 검은색이어야 한다는 사고는 고정관념에 의한 피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관념의 틀을 벗어나 노랑머리를 자연스런 모발색깔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니 그동안 갖고 있던 노랑머리에 대한 감정도 변화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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