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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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이야기

2000-12-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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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넬 남(미술가)

그날 저녁도 염치머리도 없는 비는 여전히 주룩 주룩 온 시가를 적시고 있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비가 많이 내렸다.
길을 걷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우산 밑으로 비에 푹 젖은 어린 강아지 ‘포머래니언’의 슬픈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우산을 뒤로 제키고 보니 젊은 청년거지가 젖은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인생을 포기한듯 멍하니 빗 속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니 빗 줄기들이 마치 그 청년을 응시하고 있는 듯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비를 피해 서 있는 청년에게 말을 했다. 내가 너에게 줄 것이 있으니 다른 데로 가지말고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난 빗속을 뚫고 단 숨에 세 블럭을 달렸다. 801 SUTTER ST. 1층에서 6층까지 중심부에 나선형 계단으로 유명한 싱글 예술인들의 아파트, 알프레드 힛치콕의 영화 ‘버디고’를 촬영한 건물로 매스콤을 종종 장식하는 건물에 나는 살고 있었다. 옷장에 들어가 그 해 9월 중순경 영국, 프랑스를 거쳐 아일랜드에 갔을 때 섬 기후가 너무 추워 울로 짠 긴 목도리와 털모자, 장갑셋트를 구입했던 것과 작은 담요 한장을 꺼내 들고 부랴 부랴 그 청년거지에게로 달려갔다. 울 목도리를 청년의 목에 걸쳐 주고 모자랑 장갑은 그의 손에 쥐었다. 담요는 어린 포머래니언옆에 싸주듯 놔 주었다. 옷장속에서만 잠자고 있었던 것들은 그 청년에게는 때마침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적어도 내 판단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스로 동방의 싼타클로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 청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언어란 귀찮은 존재를 빗 속에다 내동댕이질쳐 버린듯 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약간 움직여 나를 잠시 쳐다 보는 그 눈은 너무 슬퍼 눈물이란 액체는 이미 빗속으로 함께 다 떠나버린 후의 목마름뿐인 것 같았다. 침묵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어떤 언어의 세계와 동일한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는 비의도적이면서 의독적인 듯한 극히 절제된 비언어의 창조적 마력을, 적어도 마력같은 것을 소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런 의식조차도 말로서 끌어 내기엔 너무나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기력이 약해 한계가 있어 보였다.
죽음처럼 소름 끼치는 듯한 가난의 가장자리에 꿇어 앉은 청년의 눈빛은 움푹 패인 어두운 눈썹밑 그 자리에 그냥 멈춰 있었다. 겨울 바다 수심의 밑바닥까지 무언가 그를 침몰시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 절대의 가지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신들은 모든 인간들에게 결코 공정성을 보여 주지못하고 있다. 나보다 더 없는 자가 여기 서 있다. 그로 인해 과중한 부담감을 통해 오는 어두운 전율.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그는 차라리 겨울 나목이었다. 심어 논 자리에만 서 있는 속수 무책의 나무였다. 숨소리도 없는 듯한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도한 그루의 나무였다.
그 겨울 샌프란시스코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축제분위기도 아랑곳 없이 눈치 없게 내리던 비도 멈춘 며칠후 그 청년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그 나무, 뿌리가 없던 그 나무는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었다. 빗살처럼 앙상하게 드러낸 손끝에 매달려 있던 어린 친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세상에 절망의 벼랑에 선 이가 어찌 그 청년뿐이랴. 추운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감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삶의 윤기와 정열을 잃어버린, 깊은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이. 올 겨울은 모두가 가여운 이웃에게 정을 베푸는 따뜻한 계절이 되기를 기원하며 ‘자선이 없는 부자는 소금이 빠진 성찬과 같다’는 경구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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