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싼 선물의 역효과

2000-12-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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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권<전 ABC교육구 교육위원>

새로운 땅에 이민 와 살면서 가지고 온 풍습 중에 보존해야 할 것이 있고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버려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우리 한인들의 선물에 관한 습관이다. 특히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교사들에 대한 선물에 문제가 많이 지적되고 있다. 평상시에도 교사들에게 과다한 선물을 함으로써 문제가 되고 있는데 다가오는 성탄절에 교사의 책상에 수북하게 쌓일 한인 학생들의 선물을 생각하면 아연실색을 금할 수가 없다.

한인들의 선물 습관은 일본인들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명절마다 고객들에게 선물을 하고 지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일본인들을 생각하면 한인들도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선물이 엄청난 고가품이어서 미국인 교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지인의 집을 찾을 때 꽃을 들고 간다던가 회사의 경우 직원들을 위해 도넛을 사 가지고 가는 일은 있어도 선물을 사 가지고 가는 습관은 없다. 공무원들의 경우 선물 접수에 대한 규칙도 엄하고 일정한 금액 이상의 물건은 소유를 금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교육 조례를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의 경우 15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몇해전 한인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학교에 가서 교사 연수회를 하고 돌아오니 어느 교사가 비싼 시계를 한인 어머니로부터 받았는데 이것을 받아야 할지 돌려주어야 할지 걱정이라는 전화를 해온 적이 있다. 특히 이 경우는 학생이 스페인어에 낙제점수를 받아 어머니를 오시라고 했더니 시계선물을 놓고 갔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만족스러운 학과수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의 부모들이 선물을 가지고 교사에게 찾아가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부족한 자식을 교육하는 교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부모의 뜻이 이해가 되지만 받는 입장의 교사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고급 넥타이를 선물 받은 어느 남자 교사는 그것을 목에 걸고 나는 목을 매야 할 지경이라고 동료 교사들에게 조크를 하는 것을 본다.

한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 교사들의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이는 성탄선물을 생각하며 이민 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성숙해지는 우리 한인사회로서 금년만은 예쁜 카드에 아이들이 자신의 용돈으로 10달러 이내의 작은 선물을 예쁘게 싸서 선생님에게 드리는 성탄절이 되였으면 한다. 수년 전 아이 넷을 졸업시키는 어느 한인 아버지가 신세를 진 이 학교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데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장 선생님과 상의하니 농구부에 공이 필요하다 해서 공을 사다 드린 일이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혹은 클래스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서 단체로 선물을 마련해 드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새 땅에 와서 먼저 온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은 배우며 노력해서 우리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주류사회에 진출하도록 도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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