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렌트 대란

2000-1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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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이해광<경제부 차장>

최근 한국에서 이민 온 김모씨는 아들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까지 4명이 타운내 1베드룸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렌트는 최근 월 680달러에서 800달러로 올랐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베이비시팅을 해주기 위해 한국의 어머니가 합류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렌트에 2베드룸으로 이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직장인 윤모씨가 살고 있는 2베드룸 아파트는 매년 100달러 이상씩 인상, 3년 사이 렌트가 350달러나 뛰었다. 윤씨는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렌트가 치솟으면서 영화, 공연 관람이나 외식 등 돈이 드는 여가는 꿈도 못 꾼다"고 하소연했다.

LA 한인타운이 렌트 대란을 겪고 있다. 렌트는 뛰고 있지만 아파트는 모자란다. 괜찮은 지역의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웨이팅 리스트에 올려놓고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집 없는 서민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턱없이 올려놓은 렌트에 당장 이사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정도 여의치 않다.


한인들의 궁금증은 "연 10-20%씩 올리는 렌트 인상 횡포에 맞설 방법은 없는가"라는데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언제 지어진 아파트인지, 몇 퍼센트를 인상했는지 비교해 보라는 것이 고작이다. (렌트 인상폭 본보 12월7일자 A1면)

사실 5~6년전만 해도 렌트 인상은 고사하고 테넌트를 구하지 못한 건물주들은 입주자를 소개해 주면 50~100달러의 사례비까지 챙겨주며 테넌트 유치에 열을 올리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가 넘치고 공급이 모자랄 때 가격 인상은 당연할 지 모른다. 게다가 건물관리 등 비용상승에 따라 부득이 렌트를 올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렌트 폭등에 대한 느낌에 대해 한 테넌트는 "한국의 피서지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상인들에게 속수무책 당하는 여행자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인상폭이 지나치다는 말이다.

또 다른 한인은 "테넌트를 인간이 아닌 ‘수입의 원천’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 살았어도 ‘새 테넌트가 들어오면 더 이익이니 나가달라’는 발상을 바라보며 인간적인 관계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건물주들이 귀기울여 볼만한 테넌트들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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