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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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필요한 동포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2000-1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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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

▶ 김경자<플로리다 코코아비치>

플로리다로 이사 오기 전 LA 중국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할 때의 일이다.
저녁 10시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올림픽 블러버드와 페도라가 만나는 곳에 이르렀을 때 커다란 구식 승용차의 후드를 올려놓은 채 한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컴컴한 길거리에서 라이터 불빛으로 후드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안전한 지역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차를 세우고 “무슨 일이세요?” 하니까 기운이 빠지고 지친 목소리로 “예, 기름이 떨어졌어요” 하였다. 나는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럼 한 10분만 기다리세요. 제가 개스 스테이션에 가서 사올께요” 하고는 근방에 있는 개스 스테이션에 가서 1갤런짜리 통에 개스를 넣은 후 5달러를 지불하고 곧바로 갔더니 아저씨는 컴컴한 곳에 그대로 있었다.

“아저씨! 여기 기름 있어요” 하니 “어, 정말 왔네!” 하며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아니에요, 얼른 기름 넣고 가세요. 여긴 길도 안 좋은데…” 하고 차에 오르자 “전화번호라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조심해서 가세요” 하고 그 곳을 떠나왔다.


그 아저씨의 모습이 우리 오빠의 모습일 수도,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컴컴해서 얼굴도 볼 수 없었던 그 아저씨의 형상이 한번씩 어렴풋이 떠오를 때면 어느 길, 어느 골목에서 그런 경우를 당한 우리 동포를 또 만난다 하더라도 당연히 다시 도우리라 마음먹는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서며 “안녕히 조심해서 가세요” 대신에 “도움이 필요한 우리 동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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