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이 생사 갈라서는 안된다

2000-1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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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젤라 오, LA 타임스 기고)

연방정부는 7일 37년만의 첫 사형집행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빌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12일로 예정돼 있던 사형수 후안 라울 가르사의 형집행을 최소한 6개월 동안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연방 사형제도에 있어서 인종적·지리적 차별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시간을 법무부에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조치는 합당한 것이다. 가르사에 대한 사형 판결이 그가 멕시칸이라는 인종적인 요인과 범죄발생 장소가 텍사스라는 지리적 요인을 감안해 내려졌다는 점에서 가르사의 형은 집행되서는 안된다. 이같이 사람의 생사가 달린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정부의 조치에 있어서도 인종적, 민족적 편견이나 횡포가 개입된다면 참기 어렵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가르사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의 모순은 이 판결이 지금까지 미국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사형제도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지난 1972년 연방대법원이 사형제도가 인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뒤에도 연방정부는 사형제도의 개선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연방정부는 1988년에 이르러서야 대법원 지침에 따라 사형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그때는 이미 각 주정부 차원에서는 공정하고 신뢰할만한 그리고 합법적인 사형제도를 찾기 위한 경험이 16년이나 축적된 상태였다.


연방 사형제도 규정의 개정을 담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각주정부의 사형규정을 참고했다.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신중하게 정했다. 배심원 재량의 범위를 축소하고 세밀하고 한정된 지침에 따라 사형평결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경제능력이 없는 피고에게는 2명의 유능한 관선변호사를 제공하게 했다. 변호사는 최고의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절차를 만들었으며 변호사 수임료와 조사비용 등도 적정선에서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온갖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개정된 사형제도는 1972년 대법원이 위헌결정을 내렸던 사형제도와 똑같이 기능했다. 연방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사형대상 범죄 용의자중 마이너리티의 비율은 70%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데 연방정부가 사형판결을 모색하고 있는 피고중 마이너리티의 비율은 70%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사형대상 범죄 발생은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전체주중 3분의1 미만에서 사형집행의 절반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범죄를 범해도 어느 주에서는 사형을 당하는데 어느 주에서는 사형을 당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르사의 경우도 텍사스가 아닌 다른 주에서 살고있는 백인이라면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을 수 있다. 교통위반 단속에 인종적 요인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면 사형제도에 있어서는 더더욱 인종적 요인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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