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을 나누는 망년 모임을 갖자

2000-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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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빨간색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종소리가 들린다. 어느덧 세밑이 된 것이다. 거리는 온통 번쩍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뒤덮였다. 한 해가 또 다시 훌쩍 저만치 가버렸다. 들뜨는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들려오는 구세군의 종소리와 함께 온갖 모양의 망년 모임이 시작된다. 벌써부터 주말이면 호텔마다 만원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망년의 시즌이 본격 펼쳐진 것이다.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난다. 옛 은사를 만난다. 정담을 나눈다. 친구의 환히 웃는 웃음에서, 또 패어진 주름에서 새삼 세월을 느낀다.

만남이란 좋은 것이다. 세상사에 묻혀 정신 없이 지내다 어느 날 받아든 망년 모임의 초청장. 그리운 얼굴들과의 해후. 함께 지낸 즐거운 시간. 이런 것들은 삶의 아름다운 한 모습이다. 고이 간직해두고 싶은 삶의 순간 순간들이다. 훈훈한 세밑의 풍속도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적지 않은 타운 단체들이 연말 모임을 보다 많은 뜻깊은 행사로 치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송년 모임을 통해 불우이웃 돕기 기금 모금을 계획하고 있다. 과소비를 지양하기 위해 보다 조촐한 송년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강연회를 겻들인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망년의 모임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가족행사로 치른다. 반가운 현상이다.

망년 모임은 그러나 때로 천편일률의 지겨운 연례행사가 될 수도 있다. 마이크가 돌아오면 억지로라도 노래를 해야 된다. 경품권을 사야 한다. 또 내키지 않는 도네이션까지 강요받는다. 동문회 모임이든, 직장 모임이든 송년 모임이 이런 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게 전부라면 망년 모임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심한 경우 망년 모임은 ‘나 아직 살아 있소’식의 얼굴 내밀기나, 존재의 과시장이 되기 십상이다.

세밑은 스산한 계절이기도 하다. 자칫 음울한 계절이 되기 쉽다. 어두움 속에서 남들이 즐거이 만나며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세밑은 더욱 춥게 느껴진다. 이 추운 계절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구세군의 종소리는 불우 이웃을 돌아보자는 사랑의 종소리다. 병들고 지친 이웃. 생활고의 한파 속에 떨고 있는 이웃. 소외된 내 주변의 작은 자들을 돌아보자는 사랑의 종소리다.

사랑을 나눌 때 세밑은 한결 훈훈해진다. 한층 밝아진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세밑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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