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로원의 한인 노인들

2000-12-08 (금)
크게 작게

▶ 박수정<양로원 소셜워커>

어느 날 행정관과 간호사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한 환자의 방에 들어갔다.
옷장 문을 열고 가방에 옷가지를 챙겨 넣는 중년의 남자와 그것을 말리는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는 분,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울고 계신 할머니와 이들을 둘러싸고 영문을 모른 채 당황해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왔다는 중년의 남자는 형에게 분노에 가득한 목소리로 “어떻게 형이 이럴 수가 있어요? 어머니가 우리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호강시켜 드릴 것 같아서 미국으로 보냈는데, 어머니를 어떻게 이런데, 이게 고려장이지 뭡니까?”

고려장이란 말에 다른 가족들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물론 나도 한방 맞은 듯한 멍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 당장 모시겠다는 아들과 이를 말리는 가족들간의 논쟁과 혼란은 결국 행정관의 주재로 임시회의를 하게 되었다. 2시간의 회의를 통해 잠시동안의 오해와 갈등은 어느 정도 수습되었지만, 이 일은 모두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이민 1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몸담고 있지만 생각과 가치관은 한국식을 많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양로원이라고 하면 쉽게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유교적인 사상과 인간의 본성이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것이 도리이지만 미국에서의 이민여성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현실이다.


형편이 되면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일이지만 미국 같은 상황에서 24시간 치료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부모를 모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종일 부모를 안전하게 모실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무시한 채 감정에만 치우쳐서 집에서 모시기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부모에게나 자식된 입장에서 바른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로원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된 데는 한국에서‘양로원’이라고 부르는 기관들의 실태가 갈곳 없는 버림받은 노인들이 오는 곳이라는, 그리고 시설조차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에서 나오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서 양로원의 의미와 인식은 판이하다. 우선 개인소유이든, 국가 소유이든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철저한 규율과 정책아래 환자를 돌보는 곳이고, 24시간 보호와 치료가 가능하다.

입원 대상은 중풍 등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분과 지병이 있으신 분들, 또는 육체는 건강하지만 치매 등으로 인해서 24시간 관심이 필요한 분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된다. 각 분야의 의사치료, 간호치료, 재활치료, 영양식사 제공 등 환자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개인상담, 가족상담, 종교활동과 오락 등 환자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부모를 양로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가족간의 합의에 따라 내려진 선택이고 모두에게 최선의 결정이 되어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