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린스펀 효과

2000-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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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대니얼 그로스, 뉴욕타임스 칼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5월 금리수준을 인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과열상태에 있다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경제와 주식시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독자적인 노력을 해왔다.

그린스펀 의장은 "비합리적인 풍요"에 대한 경고를 발한 지 4년이 되는 날이었던 지난 5일 승리를 선포했다. 그린스펀은 이날 연설에서 주식시장, 주택건설, 자동차 판매 그리고 소비자 내구재 수요가 모두 하락했다고 밝혔다. 그린스펀은 또 미국경제가 모멘텀을 상실하고 있는 만큼 연방준비은행은 "금융시장의 자산가치 약화나 가계 및 기업지출의 지나친 감소의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그린스펀의 말을 주식시장의 거품이 사라졌고, 경제가 하향세로 접어들었으며,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다음 번 공개시장정책회의가 열리는 2001년 1월30일에는 금리수준을 하향 조정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월스트릿의 기상도가 ‘폭풍 주의’에서 ‘쾌청’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최근 주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을 경계해 잔뜩 움츠리고 있던 투자가들이 쏟아져 나와 주식을 마구 사들였다. 나스닥 지수가 하루 상승폭으로는 사상 최고인 10.47%의 상승을 기록했다. 다우존스지수도 이보다는 못하지만 3%가 올랐다.

그린스펀 의장은 말 몇 마디로 증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그러나 자신의 말에 증시가 이같이 움직이는 데는 그린스펀도 놀랐다. 그래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 문제를 협의할 시간이 됐을 때는 상황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린스펀은 경제의 지나친 약화를 걱정하는 대신 주식시장의 과열을 걱정하는 입장이 다시 된 것이다.

투자가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5일의 주가 상승은 결코 합리적인 것이 못된다. e-베이 주식이 17%로 치솟고 Cisco 주가도 13% 올랐으며 네트웍 어플라이언스 주식은 38%나 폭등했다. 이 모두가 애플 컴퓨터가 다음분기 수입이 예상치에 크게 못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발표한 날 이루어진 것이다.

이날 주가상승은 이들 회사의 수익이 높아졌다거나 이들 회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올라간데 따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린스펀의 몇마디 말에 자극 받아 쉽게 돈을 벌어볼 수 있을까 하는 얄팍한 희망에 따라 올라간 것뿐이다. 그리고 ‘1월 효과’에 대한 기대가 거기에 부채질을 해준 것이다. 1월 효과란 해마다 연말이면 보너스와 이익분배에 따른 수십억달러의 자금이 뮤추얼 펀드에 몰려 주가를 상승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1월에는 또 조지 W. 부시의 취임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5일의 주식시장 이상 상승을 부채질했다. 부시는 상속세를 없애고 세율을 인하하겠다고 공약했다. 세금 인하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주식에서 밍크 목도리에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적자감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고유가와 노동시장의 압박을 더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이자율을 당장에 내릴 전망은 희박해진다.

물론 그린스펀이 금리인하가 없다고 시사하면 주식가격은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그러면 자산가치 인플레의 위협이 사라지게 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그때에 가서야 금리인하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5일 그린스펀의 연설을 듣고 처음에는 "비합리적 풍요"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의 무심한 몇 마디에 놀아난 투자가들을 보면 아직도 요원하다는 사실이 확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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