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종 가정파괴범 ‘채팅’

2000-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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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자다 보면 남편이 옆에 없어요. 나가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거예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가정문제 상담소에 최근 들어 심심찮게 걸려오는 전화내용이다. ‘인터넷중독’‘게임중독’ 하면 청소년들의 문제로만 보통 알지만 성인들중 에도 ‘중독자’가 상당해 가정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 가정상담소의 경우를 보면 지난해 가을부터 인터넷 중독에 대한 상담이 들어오더니 이후 보통 한 주일에 한 두건씩은 상담요청을 받는 실정이다. 대개 여성들이 남편의 ‘중독’을 호소해 오는데 연령을 보면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한 상담원이 전한다.

“게임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채팅이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채팅에 매달려 가족과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채팅 대상이 주로 이성이고 보니 배우자들로서는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지요”

처음 시작은 대개 호기심이다. 익명의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재미도 있고 일종의 해방감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횟수가 반복되면서 E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사진을 교환하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목소리로 만나다가 나중에는 직접 만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배우자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 때문. 남편의 ‘채팅 중독’ 호소는 신문사로도 들어온다.


“평소 대화도 잘하던 남편이었어요. 그런데 몇달전 채팅하는 법을 배우더니 사람이 변했어요. 직장에서 돌아와 잠들 때까지 컴퓨터 앞에만 붙어있어요. 보통 하루 4시간, 심하면 8시간을 채팅에 매달려요. 자연 나와 마찰이 심하지요”

남편에게 화도 내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 주부는 고민하느라 “20일째 잠을 못 이뤄 두통이 극심하다”고 했다.

“나 혼자만의 고통은 아닐 거예요.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이런 문제 있는 집이 심심찮게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 중독이 남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 중에도 중독자들이 없지 않다. 하루종일 채팅을 하다가 남편 귀가시간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끄는 주부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인터넷 중독, 채팅 중독을 정신과에서는 아직 정식 중독증으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사용에 대한 조절능력이 상실돼 정상적 생활이 깨어지고, 금단증상이 나타나면 중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인터넷을 안 하면 불안하고, 무의식적으로 키보드 두드리는 동작을 하게 되며, 잠을 자도 인터넷만 떠오르거나 불면증이 계속되면 중독증이다. 인터넷의 노예가 되기 전에 무엇이 더 중요하지를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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