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윤회의 고리와 명예욕

2000-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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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혜수<노스캐롤라이너대학 교수>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5가지 욕심이 있는데 이것들을 끊어 버려야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한다. 5가지 욕심은 식욕, 색욕, 명예욕, 물욕, 수면욕인데 나이가 들면 식욕은 감퇴하고 색욕은 없어지고, 잠도 적게 자며, 물질에 대한 욕심도 줄어드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그러나 명예욕만은 나이가 많아지고 죽음이 가까워도 줄어들지 않고 강해지는 듯 하다. 일본 도호쿠 구석기 문화연구소의 후지무라 부이사장은 신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수차례 새로운 발굴을 하여 일본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람이다. 일본열도에는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살지 않았고 BC 1만년께 대륙에서 이주하여 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그는 구석기시대 유물을 꾸준히 발굴, 구석기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미 그 곳에 인류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고 증명하여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높여 주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한 신문사에서 미리 장치해 둔 비디오 카메라에 후지무라가 발굴 장소에 와서 몰래 유물을 파묻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어 지금까지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의 발견이 모두 허위로 판명되었다. 명예욕 때문에 학자의 양심을 속이고, 많은 책들을 폐기 처분하게 해 세상에 공해를 만들고, 후세 사람들에게 빚을 남기게 된 예가 되겠다.

우리 주위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흔히 목격된다. 지난 일년 동안 한인단체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적이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 때문에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몇번 보았다. 특히 몇 사람의 명예욕 때문에 지금 한국 경제는 크게 흔들리고 있고, 40%의 한국민들이 이민을 원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자신의 행적을 많이 남기면 남길수록 남긴 것을 잊을 수가 없어서 축생으로라도 이 세상으로 다시 오기 원하기 때문에 윤회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 아닐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조상 전래의 생활을 기록한 책 ‘무탄트’에는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것과도 불편한 관계를 남겨 두지 않고 깨끗이 정리해 세상과의 관계를 닫아두고 떠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년 전 미시간 북부의 경치 좋은 주립공원에 갔을 때 ‘사진 찍어 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세요! 발자국 남기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남기지 마세요!’라는 표시판이 있었다. 아름다운 공원에 관광온 것 같이 이 세상에 와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간다면 이 아름다운 장소에 다음에 올 세대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고 훈훈한 인간미와 겸손했던 삶말고는 아무 것도 남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주에 공해가 되고 후세들이 전혀 감사해 하지 않을 명예욕의 결과는 남기지 않는 것이 인류에 공헌하는 길이 아닐까? 한 세대가 지나면 아무도 관심이 없게 되는 호화로운 무덤을 만들어 환경을 어지럽게 하는 것보다 화장을 하여 자기가 살던 집을 깨끗이 청소하여 주고 떠나는 것이 진정으로 후손들을 위하는 길 아닐까?

또 한해를 마감하면서 어떻게 하면 머리 속에서 줄기차게 솟아 올라와 나 자신을 괴롭히는 명예욕을 끊어 버릴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어머니이신 대자연에 공해를 남기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후손들에게 빚을 지지 않고 떠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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