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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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소중한 것

2000-12-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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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미 <주부>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기 전까지 애틀랜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었다. 산업디자인 공부를 한 동생과 순수미술·응용미술을 공부한 내가 손을 잡고 벌인 일이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동안 미술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또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을 배웠다.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내 담당이었는데, 학생들과 그림 그리면서 많은 대화를 했었다.

고등학생들 경우엔 대입 준비반 아이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대학 전공, 직업, 적성 등에 대한 얘기들이 자주 나왔다. 한 학생의 경우는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어했고 소질도 있었는데 부모가 단지 ‘취미’로만 지도 받길 원해서 곤란했었다.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보는 눈을 키워주고, 그림을 사랑하게 하고, 나아가서 창의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일. 색깔과 수많은 재료들을 만지고 섞으면서 느낌을 표현하는 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 매력적인 일이 단지 배고픈 직업인이 될까봐, 돈도 못 벌고 존경도 못 받는 이가 될까봐 취미 정도로만 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안식이 안타까웠다.

요즘은 오히려 창의력과 응용력을 길러서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앞에서 말한 그 학생과는 달리 소질도 거의 없고 집중력도 없는 한 학생의 부모는 얼마든지 투자할 테니까 그림이라도 그리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이 돈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착상에 기가 막혔고, 그 학생은 부모로부터 돈만 받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 서글펐다. 금전만능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되고, 돈만 있으면 행복이 보장될 것 같은 뜬구름이 많이 떠돈다. 하지만 자녀에게 돈 외에 무엇을 남겨주고 싶은지 생각하다 보면 돈의 무게가 그리 크진 않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는 나의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신의 창조와 가장 가까운 일이라고 자부하면서 살고 있다. 큰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고, 이름을 크게 날린 것도 아니지만 세상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내 아이들에게 작품으로 보이며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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