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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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걸이와 귀걸이의 차이

2000-12-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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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덕<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교수>

폭풍우 같았던 사춘기 시절이 이젠 끝났구나 하며 안도의 숨을 돌리기 시작한 요즈음 아들과 친구처럼 대화하는 즐거움을 갖기도 하였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아들이 코걸이를 하고 집에 왔다. 쳐다보는 것만 해도 괴로운데 본인은 그것을 멋이라고 그렇게 한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기가 막혔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몇달 동안 귀걸이를 한다고 억지를 쓰는 바람에 나와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 귀걸이를 하고 들어 왔을 때도 당황하였지만 이번처럼 절망하지는 않았다.

“왜 여자들은 귀걸이를 하면서 남자들이 못할 이유가 있느냐”하는 아들의 질문에 합당한 대답도 없었기에 허락하였다. 그리고 주위에 많은 남자들이 어엿하게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기에 이번처럼 쇼크를 받지는 않았다.


귀걸이와 코걸이의 차이가 무엇일까. 귀걸이는 내가 아는 남자 교수들도 하였기에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고 코걸이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먼발치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의 아이들이 하였다는 차이 이외에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아들이 말한 것처럼 나는 너무 구식이고 편견을 가진 동양인 엄마일까. 아이들에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실제의 나의 행동은 어떠하였는가. 외모로 판단하고 색안경까지 쓰고 아들을 힐책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말과 어긋나는 나의 행동을 꼬집어 지적하는 아들에게 할말을 잃었다.

며칠 동안은 아들의 얼굴도 쳐다보기가 싫어 냉랭하게 대하였다. 남들이 (특히 한국 사람들이) 아들의 모습을 보고 나를 비웃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떠오르고, 선생으로서 남의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의 아이들이 코걸이하고 머리를 파랗게 물들이고 다니는 것을 볼 때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무심히 지나쳤는데, 나의 아들이 그러고 다니다니 기가 막혔다.

편협과 이기심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아들이 코걸이로 좀 멋을 부렸다고 너무 소란을 피웠나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는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그런 것인데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하면서 태평하다.

부모가 괜히 고집을 부려 자녀를 영영 잃어버리는 경우를 상기시켜 주었다. 아들을 노하게 하여 그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오히려 우리로서는 아들을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고 걱정하는 남편의 말에 동의하여 코걸이에 익숙하려고 노력하였다.

겉을 보지말고 속을 보라는 말씀을 주문처럼 되풀이하면서 아들 눈에 비치어진 코걸이를 보려고 애를 쓰면서 나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즐기었던 일, 기뻐하였던 일들을 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을 만큼 나열하는 남편의 반응을 은근히 부러워하며 문제는 아들이 아니고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젊은 세대의 혼돈을 이해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면서 나의 행동은 말과 반대였다. 진정한 배려도 없이 이해한다는 빈말만 하면서 나는 오히려 아들이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걸림돌이 되지나 않았나 싶다.


미술을 전공하는 아들이 코걸이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였을 때, 나는 마치 그가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가슴 아파하며 노여워하였다. 이러한 나를 이해하려고 아들은 애쓰는 것 같았다. 남자들이 귀걸이를 하는 것이나 코걸이를 하는 것이 마치 여자들이 멋 부리기 위해 귀걸이 달고 화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미국의 젊은 세대를 알지 못하기에 망상의 날개를 펴며 코걸이를 달고 다니는 남자아이들을 나쁘게만 생각한 것이다. 젊은 층이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방법인 것을 마치 몹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스레 야단을 쳤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도 아들 나이었을 적에 기성세대에 반항하였지 않았는가. 어찌 이 시대에 미국에서 자라온 아들에게 나의 생활 방식대로 살라고 고집할까. 아들이 코걸이를 하였다고 자존심 상한 것만 생각하였던 나.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을 보고 법석을 떨다가, 나의 눈에 들어 있는 대들보를 보는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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