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안부 그 진실의 소리

2000-12-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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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김종하 기자

LA 한인타운내 윌셔가를 따라가다 보면 호바트 블러버드와 만나는 지점에 대형 교회당 하나가 쉽게 눈에 띈다. 윌셔 블러버드 템플이라 이름 붙은 이곳이 그러나 유대인 교회라는 것을 아는 한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교회 내부 복도에는 유대계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마치 박물관처럼 마련돼 있기도 하다. 바로 이곳에서 얼마 전 흔치 않은 모임이 열렸다.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침묵의 소리’(Silence Broken: Korean Comfort Women)의 저자 김대실씨가 LA지역의 비한인 종교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가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그것. 미국 은퇴자협회(AARP) 관계자와 흑인 커뮤니티 인사, 지역교회 백인 목사, 필리핀 커뮤니티 지도자 등 15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은 김대실씨의 말대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홀로코스트’라는 반인륜 범죄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의 성소에서 한인이 아닌 타커뮤니티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또다른 반인륜 범죄인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됐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침묵의 소리’ 제작과 순회강연 등 자신의 ‘위안부’ 진실 알리기 활동 경과를 설명한 김대실씨의 주제 발표는 왜 50년 이상 지난 지금 이 문제가 세계적 이슈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전쟁중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약탈과 성폭행은 항상 존재해 왔지만 2차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위안부’ 만행은 군경과 민간기업까지 총동원돼 아주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범죄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당시 12∼3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 군경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 여성들도 있었다"며 "이는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이며 나아가 여성 전체에 대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위안부’ 문제가 한국인들의 문제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의 ‘위안부’ 만행에 생소했던 참석자들의 질문과 코멘트가 이어졌다. 도대체 피해자의 수는 얼마인지, 이들의 침묵의 시간이 왜 그렇게 길어야 했는지,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 정부는 어떤 입장인지 등을 물었다. ‘위안부’ 이슈를 알리는데 배상소송이 아주 효과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과 독일에 대한 ‘홀로코스트’ 배상소송에 이스라엘 정부가 적극 나섰던 것처럼 한국 정부도 일본의 책임 인정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실현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참석자들이 보여준 것과 같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폭이 계속 넓어질 수 있다면 자신이 빚을 내가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실 알리기 노력을 8년째 해오고 있는 김대실씨의 외로운 투쟁이 앞으로 그리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 교회에 모인 타커뮤니티 인사들에게 자신이 ‘위안부’ 진실 알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의 반성 없이 미래는 없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낮고 차분하게 말하는 김대실씨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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