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넷 거지와 물귀신

2000-1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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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 (편집위원)

불교설화에 ‘공덕천녀와 흑암천녀’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부자집에 성장을 한 절세미인이 찾아 온다. 황급히 문앞으로 뛰어 나온 부자가 “어쩐 일로 누추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하고 묻자 이 미인은 자신을 공덕천녀라고 소개하고 자기가 머무는 곳에는 부귀영화가 찾아 온다고 들려줬다. 때 아닌 횡재에 입이 벌어진 주인이 “어서 드시라”라고 하자 공덕천녀 옆에서 서 있던 거지 행색의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여성이 같이 발을 드려 놓으려는 것이 아닌가. “어딘데 감히 들어오려 하느냐”고 하인들이 제지하자 공덕천녀는 “그 아이는 흑암천녀라는 내 동생인데 내가 가는 곳은 언제나 따라 다닌답니다”라고 말했다. 부자가 “흑암천녀가 집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하고 묻자 공덕천녀는 “흑암천녀가 들어오는 집은 사업이 망하고 가족은 질병에 시달리며 결국에 가서는 식구가 모두 죽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기겁을 한 부자는 두 여인을 황급히 내쫓았고 두 여인은 결국 이웃 가난한 남자가 부인으로 맞아 들였다는 이야기다.

석가 세존은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인생은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고통과 기쁨, 성공과 실패가 따라 다니게 돼 있는데 중생은 어리석게도 기쁨과 성공만을 탐하며 고통과 실패는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 한다고 탄식했다. 이야기 속의 부자는 중생, 가난한 남자는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를 뜻한다.


불과 한두달 사이 미국 경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신경제가 출현하면서 불황은 옛 이야기고 호경기의 중단 없는 전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란 장미빛 전망은 쑥 들어 가고 경착륙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경제성장률 둔화와 실업수당 신청자 증가, 신규 주택과 자동차 판매 하락, 소비자 신뢰지수 추락과 재고 증가등등 나오는 얘기마다 경기 급랭 소식뿐이다.

왜 경기가 나빠지고 있느냐는데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지만 그 가장 큰 원인은 하이텍 업체의 몰락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하이텍 업체의 부침을 제일 극명하게 보여주는 나스닥지수는 지난 석달 사이 40%, 올 3월 최고치에서는 50% 내려갔으며 하이텍의 대명사 인터넷 업체들로 구성된 인터넷 지수는 75% 폭락했다. 애완동물을 인터넷으로 팔겠다는 펫츠닷컴등은 문닫은지 오래며 장남감업계의 전자혁명을 일으켜 보겠다던 e토이즈등은 최고치에서 95% 떨어진 가운데 회생이 어려울 것이란 판정을 받고 있다.

생사기로에 선 것은 군소업체뿐만이 아니다. e 커머스의 선두주자 아마존은 연초 대비 주가가 80% 폭락하면서 월급 대신 스탁옵션을 받기로 했던 직원들이 생계 유지조차 힘들어 지자 노조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대명사 야후조차 주가가 250달러에서 35달러 선으로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야후가 인터넷 업체중 가장 재정이 건실한 편이지만 이 회사 자산을 총주식수로 나눈 적정 주가는 3달러선이라며 인터넷 프리미엄이 사라질 경우 아직도 떨어질 여지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 주식의 몰락으로 나스닥에서만 2조달러, 다우와 S&P등까지 합치면 올 들어 증시에서 4조 달러가 증발했다. 미국민들이 1년 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낸 상품과 서비스 총액(GDP)이 10조 달러 선이니까 가만히 앉아 GDP의 40%가 달아난 셈이다. 이같은 거액이 증시에서 사라지기는 미 역사상 처음이다.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하이텍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주가 폭락 또는 아예 회사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고 허망해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고소해 하고 있다. 20을 갓 넘은 젊은 애들이 컴퓨터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눈 뜨고 못 봤었는데 고거 잘 됐다는 식이다. 한국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지만 서양, 특히 독일인 사이에 그런 감정이 많았는지 그런 때 느끼는 기쁨을 두고 부르는 ‘샤덴프로이더’(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샤덴프로이더를 만끽하기는 아직 이르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유례없는 호황이 상당 부분 이들 닷컴 밀리어네어들 덕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멸종할 경우 미국 경제를 지탱해 주던 중요한 버팀목 하나가 쓰러지는 꼴이 된다. 나스닥 주가는 지금까지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대평가 돼 있는 지적이 높다. 수익을 기준으로 한 역사적 평균으로 돌아가려면 2,000 포인트는 더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 주가와 경기의 반전은 호황의 불황의 사이클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공덕천녀와 흑암천녀는 항상 함께 다니는 자매라는 인생의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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