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생 부시의 속사정

2000-1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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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째 끌어 온 대권싸움이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느낌이다. 연방대법원이 개표시한을 연장해 수개표 결과를 최종 집계에 포함시키도록 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의 법적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 일단 조지 W 부시의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부시의 승리를 절반 이상 보장한 연방대법원 판결에 그러면 민주당 사람들은 이를 갈며 분해할까.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고어가 개표 결과에 불복하고 나섰을 때 대다수 민주당 지도자들은 고어의 입장을 지지, 힘을 실어주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꺼풀 뒤집고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민주당 지도자들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왜.

중간 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반대당이 승리하는 게 통례. 거기다가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민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국정 수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또 경제 불황도 예상돼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부시가 당선됐으면 하는 게 의회 민주당 의원들의 속셈이었던 것.


민주당 대권 지망생들,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나,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연방상원의원 당선자 등도 마찬가지의 속사정. 고어가 이길 경우 차기 대권 도전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내심 부시가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속사정은 그렇다고 치고 부시의 손을 들어준 연방대법원 결정을 누구보다도 학수고대했던 사람은 아마도 젭 부시일 것 같다.

플로리다주 최종 개표 결과가 올 대선의 향방을 결정하게 되자 가장 속이 타게 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지 W의 동생 젭 부시 현 플로리다주지사. 형이 당선되든, 낙선되든 이래저래 구설수 오를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다 재개표 소동까지 일어나서다.

이 와중에서 젭 부시가 취한 자세는 일단 바짝 엎드려 세인의 이목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권싸움이 확산되면서 플로리다주 의회가 특별 회기를 소집해 부시를 당선자로 확정할 움직임이 일면서 젭 부시의 처신은 더욱 힘들게 된 것이다. 주의회가 선거인단을 확정하는 의안을 마련하면 주지사인 젭 부시가 서명을 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엄청난 정치적 도박이다. 동생이 형에게 대통령직을 헌납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뻔한 사실. 젭 부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로도 비화될 수도 있다. 이같은 위험부담에도 불구, 젭 부시가 내린 결정은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쪽. 이같이 방침을 정했는데 연방대법이 부시의 편을 드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연방대법의 이번 판결로 얽히고 설킨 대권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불씨는 남아 있다. 그러나 대세는 기운 느낌으로 의회가 개입해 대통령 당선자를 확정짓는 사태는 없을 것 같다. 해서 젭 부시는 안도의 숨을 내몰아 쉬고 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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