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톨박이 컴퓨터 박사

2000-1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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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철<컴퓨터교육학 박사>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눈망울을 반짝이는 아이들! 아이들은 천부적으로 컴퓨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른들은 컴퓨터 학원에 몇달째 수강료를 투자하고서도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금새 컴퓨터와 친해진다.

굳이 심리학책을 들추어보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쳐보려고 시도한 사람이라면 나이가 어릴수록 주의집중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요즈음 2시간이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3살박이를 보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컴퓨터에 열중해서 식음을 전폐한(?) 아이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신기해서, 최소한 하나에 20달러 이상 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부지런히 사서 나르는 부모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많던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이제는 컴퓨터 때문에 걱정을 해야하는 부모도 많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잘 한다!, 잘한다!” 하면서 컴퓨터 하는 걸 부추겨줬는데, 나중에는 공부도, 운동도 뒷전에 둔 아이들 때문에 컴퓨터와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인 것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려고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같은 질문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을 점차적으로 줄여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전문가의 대답을 쉽게 듣는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언제는 컴퓨터 잘한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시더니만, 컴퓨터를 잘 할만하니까 이제와서 못하게 하다니 말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컴퓨터와 친해지고 컴퓨터를 잘 알았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 하나 변변히 없는 외톨박이 컴퓨터 박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나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던 어떤 미국 교수님의 두 딸은 흔히들 말하는 “컴맹”일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컴맹”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항상 컴퓨터에만 몰두해 있는 아빠한데 너무 진력이 나서 중학생 딸들은 아예 컴퓨터하고는 담을 쌓은 “자발적 컴맹”이 되었다고 한다.

컴퓨터가 올바른 인간관계 형성을 방해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10여년간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컴퓨터는 자녀들의 사회성 발달을 방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컴퓨터에 한번 빠지게되면 컴퓨터라는 기계하고만 놀려하고 다른 또래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일단 접어두어도 된다. 하지만 “컴퓨터가 사회성을 증진시킨다”는 단순한 인과적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면 안된다.

그간의 연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특히 나이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아이들끼리 짝을 지어서 컴퓨터활동을 하게 하고 연구를 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혼자서 컴퓨터를 많이 해도 사회성이 증진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컴퓨터 박사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외톨박이 박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부모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아주 간단하다. 아이들이 컴퓨터 활동을 할 때 가능하면 부모가 함께 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물어보고, 새로운 제안을 해주기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행하기는 무척이나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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