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둑맞은 나의 ‘꿈나무’

2000-12-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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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종식(가든그로브 아리랑수퍼 대표)

자라온 환경이 농촌이라 그런지 나는 유난히 동물과 식물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너무 좋아하면 일도 많고 탈도 많은 법인지, 남들이 들으면 우습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울 법한 동물과 식물에 얽힌 에피소드가 나에게는 많다.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정성 들여 싹을 틔우고 길러온 팜트리를 통째 도둑맞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속이 상해 팁 합쳐 한시간에 800달러나 하는 헬리콥터를 전세내 가든그르브 일대를 공중에서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허탕을 치고 만 에피소드를 하나 더하고 말았다.

남들이 들으면 도둑맞은 팜트리가 얼마나 하기에 그렇게 난리법석이냐며 혀를 찰지 몰라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골프에 미치면 잠자리에서도 마누라보다 골프공이 더 어른거린다지만 나무를 워낙 좋아하나 보니 돈보다 몇배 더 값지고 귀한 것이 내가 키운 나무들이다.


이번에 도둑맞은 팜트리는 키가 제법 어른 키 만한 것도 10여그루 되지만 나머지는 모두 내가 일하는 가든그로브 아리랑수퍼마켓 뒤 화단에서 가로세로 각 60cm쯤 되는 큰 화분에 길러오던 팜트리 종묘들이다. 포기 수로 따지만 한 1,500여주 정도 될까.

단단한 껍질에 싸인 팜트리는 싹 내기가 어려워 거의 매일 물을 주고 부지런히 돌봐도 싹이 나오는 데만 5~6개월이 걸리는데 이 종묘들은 한 7~8개월 동안 정성 들여 길러온 것들이다. 분신과도 같았던 이 어린 나무들을 잃고 난 뒤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라며 혀를 차는 미국인 헬기 조종사를 재촉해 저공비행을 하며 수색작전을 폈으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학교 때는 원예반 책임자는 언제나 내 몫이었고, 시골집 마당에 취미로 기른 장미와 국화가 전문가들 작품보다 더 탐스럽다며 화원 주인이 얼마든지 사갈 테니 해마다 잘 길러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오늘의 아리랑마켓도 이민 와서 처갓집 뒤뜰에다 심은 꽃나무가 밑거름이 됐다. 그렇게 기른 나무를 스왑밋에 내다 팔아 첫 집도 사고, 마켓 종자돈도 마련했던 것이다.

특히 마켓을 하는 바쁜 중에도 이렇게 팜트리를 키운 것은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정치에 꿈을 키우고 있는 큰아들 놈에게 앞으로 정치자금도 좀 넉넉히 보태주고, 선거 때 주위사람들에게 나무도 한 그루씩 선사하자는 원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꿈나무’였던 셈인데 그래서인지 여름 뙤약볕 아래 땅을 파고 흙을 만져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무도둑 사건 후 나는 꽤 많은 돈을 들여 마켓 뒤쪽에 모두 울타리를 했다. 이번에 잃어버린 것말고도 내가 올해 싹 틔운 팜트리만 4만주 정도 된다. 내년에는 10만주의 싹을 틔워 나무를 향한 나의 꿈은 결코 접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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