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토머스 제퍼슨을 기억할 때다

2000-1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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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조윤성 (부국장, 국제부 부장)

정치의 목적을 놓고 국민의 복리 운운하지만 그 속성이 권력을 잡는데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난 7일 선거 이후 부시와 고어 진영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코미디 소재로 끊임없이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되는 ‘가엾은’ 자리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그가 휘두르는 파워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니까. 그는 3,000여개의 요직에 자기가 원하는 인사를 마음대로 심을 수 있는 헌법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선출된 왕’인 셈이다.

이런 자리를 다 잡았다가 놓쳤다고 생각하면 잠 못 이루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부시가 마치 당선자인 것처럼 ‘몰아붙이기’에 나서고 고어가 승복 못하겠다며 법정싸움에 실낱같은 역전의 희망을 건 채 국민들의 눈총을 견뎌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걸려 있는 게 큰 까닭이다.


그동안 부시와 고어가 부르짖어온 것은 한마디로 ‘법’과 ‘원칙’이다. 부시는 법대로 해 자신이 이겼으니까 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고 고어는 법보다 중요한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며 승복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양측의 주장이 상황에 따라 법과 원칙을 마구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기면 된다는 ‘베트남 전쟁’식 사고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한 TV 정치평론가는 이를 두고 ‘위선의 정치’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위선의 정치라기보다 그냥 정치일 뿐이다. 원래 정치란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고어측의 소송과 부시측 맞대응으로 전선은 확대되고 있지만 1일 연방대법 심리를 기점으로 승패는 점차 가닥을 잡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두 후보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상대후보가 이길 경우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정권을 도둑 맞았다는 피해의식인데 대권이 ‘장물’ 정도로 취급받는 분위기 속에서는 대통령 노릇하기가 수월치 않을 게 뻔하다.

다음 대통령이 이런 냉소적인 분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큰 정치’를 펴는 것뿐이다. ‘큰 정치’와 관련해서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제퍼슨은 이번보다도 더 힘들게 대통령이 됐다. 현직인 존 아담스에 도전해 우여곡절 끝에 연방하원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 꼭 200년전 12월의 일이다.

나라는 제퍼슨의 공화주의자들과 아담스의 연방주의자들로 두 동강났다.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제퍼슨은 포용력과 이상을 바탕으로 미국을 이끌었으며 그의 재임시 루이지애나를 흡수하면서 미국의 영토는 2배로 늘어났다. "우리 모두는 공화주의자들이다.

또 우리는 모두가 연방주의자들이다"라며 통합을 역설한 그의 취임연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다음 대통령도 "우리 모두는 민주당원이며 또 공화당원"이라고 당당히 선언해야 한다. ‘치유하는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당리당략만을 추구한다면 이번 대선 사태로 왜소해진 백악관은 더욱 초라하게 될 것이다. 정책에 있어서도 양당간에 이견이 큰 문제들보다는 입장이 비슷한 현안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현실적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큰 정치’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는 단임으로 끝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 속에서도 "어거지로 백악관에 입주했다가 4년만에 퇴거명령을 받은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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