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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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양비디오와 ‘피핑 탐’

2000-1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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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은밀한 행위를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을 영어로는 ‘피핑 탐’(peeping tom)이라고 한다. 과도한 세금에 항의해 나체로 말을타고 시위하는 레이디 고디바의 모습을 훔쳐보다가 눈이 멀었다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의 양복장이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치한의 대명사로 쓰이게 됐다.

인간은 누구나 엿보기를 즐기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소위 몰카류의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예가 얼마전 CBS가 내놓아 공전의 히트를 했다는 ‘서바이버’다. 그러나 엿보기는 도가 지나치면 병이된다. 새디즘,매저키즘등과 같은 성도착증의 하나로 남들의 섹스행위를 엿보아야만 성적만족을 얻는 관음증(voyeurism)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한국은 온 국민이 B양 비디오를 못봐 난리치는 관음증 환자가 돼있다. B양은 가수 백지영이다. 금년 22살의 백지영은 작년7월 ‘선택’이라는 노래로 라틴댄스 열풍을 일으키며 데뷔, 1년여만에 톱가수 반열에 올랐다. 화끈한 몸매에 육감적인 춤으로 남성팬들을 사로잡아왔는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단란주점 호스테스 출신이다" "전 매니저와 관계를 담은 비디오가 있다"는 등 악성 루머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루머로 돌던 섹스신 테입이 인터넷에 떠 한국남성들치고 못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졌다. 2년전 한바탕 난리를 피웠던 O양 비디오와는 달리 38분짜리 B양 비디오는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나왔고 음란의 정도는 덜하다고 한다. 백지영측은 상대남성인 전매니저가 몰래 촬영을 한 것이 나돌게된 것이라며 당사자를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고발했다.

B양비디오를 처음 인터넷에 띄운 것은 시카고 소재의 한 사이트인데 20달러씩 받고 20만명에게 파일을 팔아 거액을 챙긴후 잽싸게 사이트를 닫았다. 이 파일에는 당초 복제방지 암호가 걸려 있었는데 어느 대학생이 해독, 수백만명이 무료로 받아볼수 있게 됐다. B양비디오 확산에는 언론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스포츠신문은 물론 일간지,방송사등에서도 앞다퉈 선정적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관음증 본능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검찰에서 수사에 나섰는데 처음 인터넷에 띄운 장본인은 못잡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파일을 띄워 15만명이 복사하게 만들었다는 한 10대소년만 구속했다.

여기서 백지영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비디오가 그녀의 동의하에 촬영됐든 아니든 간에 개인의 은밀한 행위를 공공연하게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남의 부부침실을 터놓고 들여다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도 모든 불이익은 정작 피해자인 백지영에게 돌아가고 있다. 방송 출연을 못하고 있고 첫 리사이틀 일정까지 연기됐다. 모여자대학에서는 백지영을 내년도 특차입학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말썽이 나자 그런적 없다고 잡아떼고 있다고 한다. 실컷 재미있게 보고나서 손가락질은 웬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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