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나눔이 주는 큰 기쁨

2000-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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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 김명규(음악인)

전기불조차 들어오지않는 곳이었다. 어둠이 내리면 일상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곳, LA에서 그리 멀지않은 멕시코 샌퀸틴의 생활환경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했다.

지난주 따라나선 닥터 최의 의료봉사 나흘은 내겐 정말 새로운 체험이었고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어주는 감동이었다. 밤 늦게까지 9시간 긴 길을 달려간 네 명의 의료봉사자들은 현지에서 합류한 헌신적인 미국인 목사와 함께 이른 아침부터 환자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펴기 시작했다.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환자들의 행렬에 비해 의료진은 턱없이 모자랐지만 의사의 얼굴에도, 환자의 얼굴에도 짜증의 그림자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돌봐주고싶어하는 마음과 무조건 신뢰하며 고마워하는 감사만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어린이들을 위한 찬양 인도와 영화 상영이었다. 이들을 위해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작은 공간, 흙바닥 ‘교실’로 내가 기타를 치며 들어서는 순간 고사리 손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냄새로 숨이 막히고 먼지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인 그 ‘무대’에서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어떤 화려한 무대에서보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했다.


그들은 처음엔 조금 수줍어 하다가 곧 힘찬 소리로 찬양을 따라 불렀고 내가 돌려주는 두편의 영화를 숨죽이며 관람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종교영화를 볼때는 숙연해했고 두 번째 타잔영화가 시작되자 환성과 함께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작은 얼굴들…맨발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 흙과 모래로 뒤범벅된 어린 청중들은 세상의 어느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오랫동안 감지를 않아 딱딱해진 그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내 눈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베벌리힐즈를 쳐다보며 한없는 선망을 보냈고 거기에 비해 초라한 내 모습을 속상해 했던 내가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발전기가 멎으면서 사방은 다시 캄캄해졌지만 있는 힘을 다해 손뼉을 치던 고사리손들은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와 떠날 줄을 몰랐다. 내일 또 꼭 올거냐고 다짐하고 졸라대는 그들을 달래며 돌아서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없는 신뢰와 감사를 보내는 환자들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의료진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은 듯 했다. ‘내가 가진 작은 것들을 조금만 나눌 수 있다면 나도 남에게 이처럼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우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같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닥터 최가 의료봉사를 다녀오면 늘 하던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도움보다 그들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기쁨이 훨씬 큽니다"는 말의 참뜻을 실감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다시 9시간 긴길을 달려 돌아오며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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