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못다한 효도

2000-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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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구<비션비에호>

지난 5월 모국방문때 일이다. 미국생활 22년간 4번정도 한국을 다녀왔지만 이번이야말로 엄마를 뵙는 마지막 여행이 아니겠느냐며 그동안 미루어 왔던 효도를 한꺼번에 할 예정으로 방문 한달전 부터 계획을 했다.

어머님 나이 85세. 가까이 모이시는 엄마 친구분들을 초청해서 맛있는 음식을 직접 우리손으로 장만하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아나고회를 대접하고, 또 엄마를 온천장에 모셔 목욕도 좀 시켜드리고…여러가지 계획을 가지고 한달전부터 엄마의 건강과 안부를 물었다. 별고없이 잘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한껏 가슴 부풀어 있었다. 이번에 가서 엄마용돈도 좀 드리고 그동안 가서 얻어먹은 형제들 한꺼번에 빚을 갚는 심정으로 한턱 써야지 하고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가기 일주일 전에 또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누나 말이 엄마가 정신이 좀 이상하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모셔가 검사를 받으니 왼쪽 엉덩이 부분 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 꼼짝없이 누워 계셨다.


방문 첫날은 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옆에서 미국 막내아들 상구가 왔다고 몇번 이야기해도 어떤 때는 알듯 하다가 다시 앓는 소리를 내곤 했다. 하루이틀 지나자 완전히 나를 알아보았다. 그때 정신차려서하는 말이 “너는 언제 여기와서 살려고하노” 엄마의 물음에 대충 어물쩍 대답했다. “곧 올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또 거짓말이지만 그 대답외에는 다른 대답이 나오질 안했다. 22년 타향살이한 아들을 아직까지도 기다리며 곁에서 같이 살고싶은 심정을 엄마의 음성과 얼굴에서 읽을수가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견딜수 없는 고통이 엄마의 얼굴표정에 나타났다. 좀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을때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엄마 젖을 한번 만져보고 싶은데” 말없이 엄마는 러닝 셔츠를 위로 끌어올렸다. 옆에서 보고있던 누나는 “엄마, 미쳤어”하고 중얼거렸다.

내 나이 52살. 7번째 자식으로 늦도록 엄마품을 떨어지기 싫어하던 나.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잠들던 어린 때로 돌아가는 마음이었다. 유난히도 큰 엄마의 젖가슴. 많은 형제들을 키운 그 생명체. 어릴 때의 느낌을 힘없이 누워있는 엄마한테서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뼈 수술을 해야될지 형제들 끼리 의논도 하고 의사와 의논도 해보았지만 너무 노환이라 뽀족한 방법이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며칠후 퇴원, 집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움직일수 없어 누워만 계셨다. 우리가 계획했던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누워있는 엄마에게 무엇을 좀 해드릴까 생각하면서 수건을 적셔다가 얼굴과 손, 몸을 닦아드리고 몸도 주물러드리고 할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동한 못다한 효도를 조금이라도 더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마 내가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고 엄마가 몸이 성했다면 어떻게 하든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고치게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를 못했다. 자식과 부모의 차이가 여기에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한계를 느끼며 마음이 아팠다.

며칠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겨우 엄마를 침대곁에 앉혀놓고 절을 드리려 했다. 미국서 사느라 못다한 세배를 엄마에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 입에서 “아픈 사람에게 절 하는거 아니다”는 말을 듣고 절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빨리 또 올께요” 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꼼짝도 못하고 누워계신 엄마를 두고 온다는 것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2개월 정도 지난 후 지난 7월말께 엄마는 돌아가셨다. 내가 자리 잡으면 꼭 한번 효도하려고 했는데. 내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항상 정신없다가 이제 겨우 정신 차릴만하니 엄마는 떠나가고. 그렇지만 지금도 엄마의 젖가슴을 만져본 손에 감각과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엄마 생각하면 다시 그 온기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이미 잠든 어머님.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아들 얼마나 보고 싶었습니까. 아들 미국 보내놓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산에 있는 산신령님, 바다에 계신 용왕님께 아들 잘 되라고 얼마나 빌다가 가셨습니까. 다음에 정말 이별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오래도록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엄마 평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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