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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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많은 장애물 경기

2000-11-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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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 리<메릴린치 재정자문가>

한국에서 올해 수능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되어 만점을 받고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수험생들은 귀중한 산 교육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입시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 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험생들로 하여금 예상치 못했던 극한 상황에서의 위기관리 능력을 개발시켜 주려는 교육부의 심려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처받을 절대 다수의 수험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분명 정책 실패다.

한국의 교육정책에서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조기유학이다. 문제점 투성이인 현 입시제도의 대안으로 교육의 질이 훨씬 높다는 유학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고려해보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조기유학생들의 성공사례뿐만 아니라 실패사례도 연일 화제에 오르는 만큼 그 장단점을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기유학이란 말은 일종의 모순어다. 어른이 해도 어렵다는 유학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직 성장기에 있는 중고등학생이 해 보겠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기유학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실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조기유학이란 명제를 단순화시킬 경우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첫째는 부모가 물리적으로 떨어져있는 상황에서 미성년 자녀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이고, 둘째는 어떤 결과를 두고 성공했다고 평가할수 있느냐이다. 어린아이를 우물가에 데려다 놓으면서 그 위험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또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바라는 소기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한집에 살면서도 통제가 안되는 자녀라면 조기유학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내 경험으로 보면 뚜렷한 목표와 어지간히 강한 결심이 없다면 조기유학이란 너무나도 위험한 장애물 경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공했을 경우 학문적 성취는 물론이거니와 자신감이라는 물질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산을 얻게 되지만 그 반대로 실패할 경우 학비와 시간이라는 기회 비용 뿐만 아니라 본인의 자신감에도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러한 파괴적 위험성을 무시하고 자녀의 미래를 담보로 조기유학(遊學) 시키겠다면 그야말로 부모의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겠다.

조기유학의 성공의 척도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대학 입학허가 통지서다. 그러나 이 경우 자칫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위험한 논리로 빠질수 있다. 현재 기성세대가 고민하는 가치관의 혼돈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대입보다는 그 전과 그 이후의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바람직 할 것이다. 학연사회의 사고에 익숙한 부모들로서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대학이 결코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자녀의 노력과 순수한 취지에 더 큰 관심과 배려를 보낼 때 우리는 부모로서 존경받고 우리 자녀는 책임감있고 윤리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기유학은 이미 특정 계층만의 선택이 아닌 보편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다. 조기유학을 통해 책임있고 윤리적인 인격체를 양성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그 기회를 잡는데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조기유학은 부모와 자녀의 이인삼각 장애물 경기이다. 부모의 관심과 지속적인 모니터링 없이 그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는 어느 게임기 선전 카피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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