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를 해야할 이유들

2000-11-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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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2년전 장애아동 특집 취재를 하면서 만난 한 주부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들이 모이면 자식 때문에 속상한 얘기들을 많이 하더군요. 자동차 가지고 나가서 정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니 속이 탄다. SAT 시험볼 날이 내일모레인데 TV만 본다… 나도 그런 일로 속상해 봤으면 좋겠어요”

부모들이 말 안듣는 자녀와 티격태격하는 잡다한 일들을 그는 모두 부러워했다. 선천성 장애아인 그의 딸은 자동차를 몰고 나가 늦게 돌아올 일도, SAT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부모들의 불평·불만이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호사였다. 그 주부의 말이 새삼 떠오른 것은 감사의 계절, 추수감사절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인들은 계절을 여성에 비유한다.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
인, 그리고 겨울은 계모”- 봄은 처녀처럼 감미롭고,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요하며, 가을은 남편 잃은 부인처럼 쓸쓸하고, 겨울은 계모같이 차갑다는 것이다.


쌀쌀한 계모의 계절인 지금은 삶에 대해 냉정한 점검을 해볼 때다. 지난 1년간 ‘내가 어떤 삶을 살았나’하는 삶의 대차대조표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지, 그래서 무엇을 성취했는지, 보람은 있었는지 등을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하겠다. 그 다음에는 내가 들인 노력과 내가 지금 가진 것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러다 보면 “따지고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참 많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감사의 마음이 솟는 것이 대개의 경험이다.

감사는 이 세상을 나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이웃들의 은혜에 의지해 산다는 소박한 인식을 기본으로 한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란 옛말이 감사에 대한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쌀알 하나를 만들려면 밭갈고, 씨 뿌리고, 김매고, 추수하느라 농부가 7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밥알 하나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씹으라고 우리 할머니들은 가르쳤다. 유태인 전통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빵 하나를 먹기 위해서는 밭을 갈고, 씨 뿌리고, 거둬, 빻아 가루만들고, 반죽하고, 굽고…15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니 그 많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를 잊지 말라고 가르친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쌀도, 빵도 너무 넘쳐나서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이 세대를 향해 테레사수녀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허다한 고통들이 있습니다. 굶주림에서 오는 고통, 집없음에서 오는 고통, 질병에서 오는 고통. …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은 외로운 것, 사랑받지 못하는 것, 옆에 아무도 없는 소외감”

그러니 이런 고통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이미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가르침이었다. 장애아동 취재중 만난 또 다른 주부에게 감사의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 아이가 이제는 10까지 셀줄 알아요. 이름도 써요”
뇌성마비인 그의 딸은 그때 12살이었다.

비교와 욕심을 버리면 감사는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갖지 못한 것을 향해 밖으로만 향하던 눈을 안으로 돌리면 그 순간 마음의 부자가 된다.

감사가 반드시 소유를 전제로 하는 것도 아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랍비가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여행을 떠났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헛간을 하나 발견해 거기에 머물기로 하고 등불을 켰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져 버렸다. 사방이 캄캄해지자 여우가 와서 개를 죽이고, 곧 이어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낙심한 랍비는 동이 트자 램프 하나만 들고 터벅터벅 인근 마을로 걸어갔다. 그런데 동네가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알고보니 전날밤 도둑떼가 습격해 부락민을 몰살시킨 것이었다. 그제야 랍비는 깨달았다. 바람으로 등불이 꺼지지 않았더라면, 개나 당나귀가 살아있어서 소란을 피웠더라면 자신도 도둑들에 발견돼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당장은 불행으로 보이는 것도 지나보면 감사의 조건이 될수 있다. 먹구름 이면의 빛나는 햇빛을 보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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