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미국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원래 나는 바빠서 영화나 TV 연속극들을 많이 보지 못하는 형편인데 엊그제 팔로스버디스 도서관에 들렸다가 우연히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12부작 비디오를 발견하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빌려와 집에서 틀어 보고는 그 내용과 스토리에 너무나 반하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이틀만에 다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1962년 9월12일 케네디 대통령의 달나라에 인간을 착륙시키겠다는 선언을 필두로 하여, 5년 후인 1967년 1월27일 지상 실험실에서 우주비행 연습 도중 불의의 화재사고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3명의 우주인과 파괴된 아폴로 1호선의 이야기로부터 1969년 7월20일 인류 최초로 인간이 달에 착륙하는 아폴로 11호선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1972년 12월15일 마지막으로 달을 떠나는 아폴로 17호선에 이르기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방대한 대작이다.
영화는 연대별 또 아폴로 우주선 각 호별로 그에 얽힌 과학자들과 우주인들의 진지하고 정열적인 탐험정신 또는 개척정신 그리고 우주선 제작사 또는 우주개발국과 정치인들 간의 압력과 갈등, 보도진간의 경쟁 그리고 우주인들의 가족들과 친지들간의 사랑과 우정 및 회생과 헌신의 모습들을 깊이 있게 그렸다. 당시 국제적으로는 월남전 참전 찬반논쟁과 국내적으로는 킹 목사를 주축으로 하는 흑백인종간의 대립으로 인한 어수선하고 불안한 사회상황 가운데서도 오직 우주탐험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일편단심 정진하는 우주인들의 모습이 담담하면서도 힘있게 그리고 극적인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잘 조화시킨 우수한 작품이다.
가령 우주인들 중에 누가 먼저 1호선을 탈 것인가. 아니면 누가 먼저 달에 첫발을 내릴 것인가 또는 달의 어느 지점에 착륙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해당자들이 모두 모여 장시간에 걸쳐 기탄 없이 의견을 교환하지만, 결국 실무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합리적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결정하는 장면들, 그리고 일단 정해진 그 결정을 아무런 이의 없이 수용하여 모두들 존중하는 장면은 우리가 배워도 한참은 더 배워야 할 대화방법 및 생활철학 같아서 부러웠다. 성공적인 우주인이 되기 위하여 맹훈련 중인 남편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자식들을 혼자 돌보며 봉사하는 아내들의 모습은 한국의 이조시대 어느 현모양처 못지 않게 철저하고 헌신적이어서 아름다웠으며, 그러한 아내들을 사랑하는 우주인 남편들의 모습도 든든하며 믿음직스러웠다.
영화가 거의 끝날 때 쯤 한 우주인이 다른 동료에게 “마음은 무엇을 채우기 위한 통이 아니고 어둠을 밝히기 위한 불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의 뇌리와 가슴에 깊이 박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미국은 크고 아름다우며 멋있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