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창조문예’라는 동인지가 발간되었다.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다가 ‘천당행과 지옥행’이라는 제목 앞에서 그냥 넘겨 버렸다. 으레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점잖게 살아서 천당에 가라. 교회에 빠지지 말고 나가라, 십일조 열심히 내라는 얘기겠거니 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언젠가 집을 치우다가 책장에 꽂힌 그 책이 내 손을 끌었다. 20년이 휠씬 넘은 색깔 변한 그 책을 다시 폈다. 그 옛날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때에 보지 못했던 그림이 보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 속의 의미가 느껴졌다. 그 뿐 아니라 그렇게 무시 받았던 그 작품이 절절이 내 가슴으로 와 닿는 것이었다.
어느 기차역이었다. 한쪽 기차는 천당행, 다른 쪽은 지옥행이다. 이쪽 차에는 목사, 신부, 수행자, 교사 등등 세상에서 존경받고 누가 보아도 천당행에 적합하다고 느낄만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돌아보며 만족한 모습으로 경건한 기도를 올리고 있으며 다른 차의 사람들의 부정과 잘못을 비난하고 있다.
기차는 서서히 출발한다. 지옥행을 탄 도둑, 창녀, 깡패… 삶에서 지치고 초라한 사람들과 아직 술이 덜 깬 그들의 횡설수설로 시끄럽다. 그들은 자신이 했던 행위를 심히 부끄러워하고 후회했다. 이제 마지막 심판이 왔는데 어떡하느냐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때 천당행 기차 내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여러분이 지금 타고 있는 기차는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유와 내용은 짐작이 가리라. 반대로 지옥행 기차에는 역시 천당행 안내방송이 된다.
천당행 기차에는 소동이 벌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억울하다, 잘못된 방송임에 틀림없다, 등등 분개하여 어쩔 줄을 몰라한다.
지옥행 열차에서도 마찬가지 난리가 난다. 아이고 그럴 리가 없다,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의 몸, 천당에 가면 내 무슨 염치로 살까.
술집여자가 떠든다. “난 지옥으로 보내달라. 천당행 기차 속에 있는 사람들과 천당에 가느니 지옥이 좋다. 거짓하고 위선하고 남을 헐뜯고 미워하면서 잘 위장하는 그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숨이 막혀 못살 것이다…” 등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연장이 천당이요, 지옥이라고 생각해 본다. 지금의 기쁨과 아픔이 그 천국과 지옥을 향해 길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생과 저승 사이의 이승에서 천국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오늘 내가 생각하는 것, 방금 내가 선택한 길,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일,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내가 찾고 싶은, 끝내 도달하고자 하는 곳, 지금 내 몸과 영혼이 향해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