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덩이가 있는가?

2000-11-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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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세이

▶ 이 정인(국제부 부장대우)

며칠전 방송에서 젊은 나이로 죽은 남동생을 생각하며 장학재단을 만든 여변호사의 얘기를 들었다. 지면에서도 봤지만 직접 들으니 감동의 도가 더했다.

대통령 선거 관련 뉴스가 공기까지도 도배해버린 듯한 이즈음에도 어려운 사람들에 따뜻한 마음과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얘기는 역시 맘에 와닿는다.

뉴스가치에서는 밀려 비록 1단으로 처리되거나 대부분은 본인과 몇몇만 알고 넘어가지만 그는 분명히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다소 쑥스럽고 빛바래는 듯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선행이나 봉사활동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사회가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런 스토리는 안에 꼭꼭 숨어있는 사랑을 두레박으로 길어내는 도미노현상을 일으킨다.

신문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평범한 사람보다는 뉴스 포커스가 된 사람, 성공과 불행의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 특별한 삶을 일궈 온 사람...등등.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각자의 색다른 삶의 얘기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평범한 이웃돕기를 실천한 이들이다. 개인의 대대적 성공 사례를 폭발적 인기속의 팝뮤직에 비교한다면 타인의 불행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손길은 가슴 저 깊은 곳을 터치하는 클래식음률 같다.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아들을 위해 적립했던 학자금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한 홀어머니, 전가족을 초청해서 경제적 자립까지 밑받침했던 큰형이 사망하자 조의금에 돈을 보태 형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한 동생들.

돌아가신 어머니가 붓던 계돈이 나오자 ‘어머니가 좋아할만한 일에 쓰자’며 자선단체를 찾아 무명으로 기부한 젊은 딸. ‘미국에서 제대로 자리잡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일부라도 나누고 싶다’며 소리소문없이 도울곳을 찾던 의류업계의 몇여성들. 불행한 사람만 나타나면 과부의 엽전한냥을 쾌척하는 사람들. 불우한 환경의 아이를 입양해서 친자식처럼 키우는 이웃등... 꼽자면 한이 없이 이어진다.

이들의 초심은 조건이 없다.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어 나선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경우 처음 맘먹었던 봉사나 헌신에 대한 열정을 곧 잃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껏 해왔던 선행까지도 후회를 한다. 밖으로 드러난 선행일수록, 또 그것이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 경우 당사자의 ‘좌절의 도’는 더욱 큰 것 같다.

그들의 순수성과 손길을 악용하고 질시하고 또 방해하는 세력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결과 이들은 "이용만 당하고 보람도 없고 욕만 잔뜩 먹는 일에 왜 뛰어들었던가?"라는 회의속에 도중하차하고 달팽이마냥 숨어버린다.

피해망상증과 불신감에 가득 찬 채 "다시는 안하겠다"고 되뇌는 이들을 곁에서 보면 안타깝다. 숨어버리는 그들이 많을수록 주변과 사회, 나아가서는 국가가 삭막해져서 모두가 살맛없는 세상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모임에 갔다가 시카고지역에서 꽤많은 홈리스들이나 불우청소년들에게 만날때마다 1달러~2달러씩을 주면서 전도도 하고 자신이 받은 축복을 감사하는 기회로 삼는 공인회계사의 말을 들었다.

그는 사람이 일생을 통해 자신과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 기회는 의외로 많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자신에게 돈을 받기위해 정기적으로 찾아오거나 길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복덩이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을 복덩이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물질이나 마음, 시간을 조건없이 내놓는 순간 진정한 기쁨과 축복을 얻는다는 마음가짐이 그를 평생동안 그같은 일을 지속하게 했을 것이다. 얼마만큼 주면 어떤 면으로라도 그댓가를 받으려는 보상심리가 없으니 피해망상이나 불신감이 더 배가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1년동안 경작한 농작물을 놓고 감사하는 의미로 시작된 추수감사절이 또 다가왔다. 형식적인 추수감사절로 지내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복덩이를 갖고 있는지를 헤아려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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