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억울한 희생 언제까지 가려나

2000-11-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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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나 김<뉴욕 가정문제연구소장>

벨 소리에 깨어서 받은 전화 내용은 15살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이 부인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하고 그 남편도 자해해서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살해당한 여성의 이웃에 사는 친구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또. 그 아들은 어떻게 이 상처를 딛고 살아가랴.

두달 전에도 도박과 폭력으로 당하기만 하고 참고 살던 착한 부인이(자녀가 셋) 일주일만에 돌아온 남편과 다툼 끝에 칼로 남편을 찔러 지금 감옥에 있는 사건이 생겨 마음이 아픈 상태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단체에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홍보해 왔고 주저말고 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청하라고 각 언론매체를 통해 그렇게 알렸는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해질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 상담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왜 이렇게 관계자들을 무능하고 슬프게 만드는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죽은 여성은 열심히 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착하고 상냥한 사람으로 칭찬받아온 사람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그와 많은 전화가 오고 가긴 했지만 그의 불행한 삶을 몰랐었고, 그 분은 내가 가정문제 관계자라는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일 때문에 전화로만 알았던 분이었다.

그녀의 친척 한 분은 그녀에게 가정문제연구소의 전화번호를 대주면서 꼭 도움을 청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 했었다는데 왜 미리 좀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 그랬더라면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이라도 했을텐데, 정말 안타깝다.

결혼 후 이날까지 하루도 가슴 졸이지 않고 산 날이 없었다는 주위사람들의 이야기. 이번 문제만 해결되면 남편 없는 곳에 가서 단 둘이 살자는 아들과의 굳은 약속도 이젠 다 소용없게 되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시간이 흘러도 영 잊혀지지 않은채 또렷하게 살아있는 마음 아픈 일들이 있다. 이번 일 역시 내 가슴속에 오랫동안 아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녀와 같은 문제는 그때그때 현실에 맞는 현명한 대답과 행동이 필요하다. 하나뿐인 자신의 삶, 자기 자신이 분명 지켜야 된다. 문제시는 상담기관에 도움을 청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다시는 우리 동포사회에 이토록 슬픈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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