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약사범 환자 논란

2000-11-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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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디 착한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인류 역사상 법이 없었던 사회는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를 증명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언을 담고 있는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을 필두로 모세의 율법과 고조선의 8조금법에 이르기까지 고대 국가에서 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서양에서 형법의 목적은 죄인을 벌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시켜 정상적인 사회인을 만드는데 있다는 사상이 대두됐다. 죄수를 가두는 곳의 이름이 ‘감옥’에서 ‘교도소’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범죄자가 나쁜 짓을 저지른 악인이냐, 불우한 환경 탓으로 나쁜 습관에 물든 병자냐 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철학자와 형법학자 간에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보는 게 일반의 상식이지만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다. 알콜에 중독돼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환자인가 범죄자인가.


마약도 비슷한 케이스다. 지금까지 마약중독자는 범죄자 판정을 받아 감옥에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내년 7월부터 가주에서는 단순 마약사용자(판매나 폭력 사용자 제외)는 환자로 분류돼 감옥 대신 치료소로 보내진다. 프로포지션 36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가주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죄수는 16만2,000명으로 서방국가중 가장 많다. 그중 1/3이 마약 사범이다. 새 법이 시행되면 매년 3만6,000명의 죄수를 줄일 수 있다. 현재 죄수 한명을 1년 동안 감옥에 가두는 데는 2만달러가 들어간다. 프로포지션 36은 마약중독자 1인당 4,000달러의 치료비를 배정하고 있어 1인당 1만6,000달러가 절약된다. 주정부는 연 2억5,000만달러, 지방정부는 4,000만달러, 교도소 건설비용 5억5,000만달러 절감이 예상된다.

가주민들은 1996년에도 의료목적의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하는 주민발의안을 통과시켰다. 올해는 네바다, 콜로라도에서 똑같은 안을 승인했으며 유타와 오리건에서는 마약사범의 재산을 압류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민발의안이 통과됐다. 대선에 가려 잘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연달아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법안이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은 큰 변화다.

미국인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은 수십년째 해오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이 돈만 많이 들고 무고한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면서 별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말리부에서는 백만장자가 마약밀매단으로 오인돼 자택에서 경찰에 의해 사살되는가 하면 AIDS 환자가 마리화나 처방이 금지되는 바람에 죽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새 법이 실효를 거둘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사법당국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 이 안이 주민 61%의 지지를 얻어 통과된 것을 보면 현 마약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실망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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