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 선거 시나리오

2000-11-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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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철 주필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복잡하게 꼬여 가고 있다. 만약 양측이 소송에 소송을 거듭한 끝에 내년 1월 20일까지 승자가 판가름이 안나면 어떻게 될까. 클린턴이 한번 더 할수 있을까.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어느 코미디언이 “당신이 한번 더 하지 그래요?”라고 말하자 “I am OK”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뼈 있는 농담이다.

클린턴이 더 하고 싶어도 더 할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다. 새 대통령 취임일자인 내년 1월 20일에는 무조건 백악관에서 나가야 한다. 그럼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연방하원의장이 대통령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워낙 열기가 높다 보니 별 가설이 다 나돌고 있다. 선거인단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몇명의 공화당 선거인이 민주당의 고어후보를 찍으면 고어가 대통령이 된다. 미국의 26개주는 선거인이 당을 배반해도 전혀 법으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 DC와 19주만이 원래의 목표대로 투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5개주는 얼굴 바꾼 선거인에 대해 1,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뿐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개표로 끝난 것이 아니다. 선거인단이 모여 대통령을 뽑는 오는 12월 18일이 법적인 대통령 선거일이다. 이날 투표에서 비로소 미국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만약 선거인단 투표에서 부시와 고어가 동률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연방하원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플로리다 주정부가 부시후보에게 유리한 결정을 노골적으로 집행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캐더린 해리스 주총무처 장관이 공화당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주지사의 허락없이 총무처장관이 재검표 마감시간을 정한후 최종집계를 일방적으로 발표했을 리가 없다. 플로리다 주지사는 부시후보의 친동생인 젭 부시다. 선거운동 기간동안 조용하던 젭 부시 주지사가 왜 이렇게 개표 과정에서 염치불구하고 형의 편을 들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플로리다 주지사인 젭은 그 동안 공화당내에서 오해가 좀 있었다. 왜 형이 출마했는데 그렇게 소극적이냐. 자기가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 부시 가문에서 3명이나 대통령을 배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형이 낙선하는 것은 오히려 기회도 된다. “어차피 형은 대통령 감으로는 좀 약하다. 형이 당선되는 날에는 나는 영영 기회가 없다.” 대략 이런 루머가 나돌았었다.

투표 당일날 부시의 가족들은 텍사스 오스틴에 모였었다. 초저녁 TV에서 고어가 플로리다에서 이겼다는 뉴스가 나오자 가족들의 얼굴빛이 사색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때 주지사인 젭이 눈물을 글썽이며 부시후보에게 다가가 “조지, 정말 미안하게 됐어”라면서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부시가 리드하는 쪽으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내 생전에 이렇게 가슴 조마조마해본 적은 없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번 선거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모두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은 승자, 한 사람은 패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가 당선이 되든 고어와 부시는 2004년에 또 대통령 출마할 것을 꿈꾸고 있는 정치인이다. 이번 개표과정에서 스타일 구기면 정치생명이 끊어질수도 있다. 따라서 낙선자는 패배하면서도 승자처럼 보이는 길을 택할 것이고 당선자쪽에서 또 그렇게 상대방 체면을 세워줄 것이다. 둘이 다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마비시키는데는 9가지 방법의 선거소송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 부시와 고어의 극적 타협이 있으리라고 본다. 아마 고어쪽에서 양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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