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락이 뒤바뀔수도 있다

2000-11-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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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수 또 변수 대통령 선거

▶ <민경훈 편집위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점입가경이다. 대선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승자가 가려지지 않은 것은 물론 언제 시비가 마무리될지조차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도대체 누가 다음 미국 대통령으로 뽑힐 것인지 시나리오를 엮어 본다.

한때 부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던 미 대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다. 주말을 지나면서 차기 내각 조각을 구상할 정도로 여유를 보이던 부시쪽은 초조한 기색을 보이고 있고 ‘진 선거를 재판으로 끌고 가 이기려 한다’는 여론의 몰매를 맞던 고어쪽은 여유를 되찾은 표정이다.

판세가 역전된 원인은 수개표 작업 결과 초기이기는 하지만 컴퓨터 개표 작업 때보다 고어표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고어측이 수개표를 요구한 플로리다 4개 카운티 전역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승리는 고어에게 돌아갈 것으로 점치고 있다.


부시측은 이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플로리다 연방지법에 수개표 금지요청 소송을 제기했으나 ‘플로리다 주선거에 연방법원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13일 기각당했다. 부시진영은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지는 바람에 두가지 상처를 입었다. 첫째는 ‘법원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원래 입장을 스스로 뒤집음으로써 고어측의 소송 움직임을 비판하기 힘들어졌다. 두 번째는 수개표 작업을 막기에 급급해 부시한테 유리한 지역의 수개표 요청 데드라인을 놓친 것이다. 수개표 지지자들 주장은 투표지에 구멍을 내 지지후보를 표시하게 돼 있는 현 방식하에서는 구멍을 제대로 내지 않아 구멍난 종이의 일부(chad)가 투표용지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달라 붙은 경우 컴퓨터가 이를 무효처리하기 때문에 사람이 눈으로 들여다 봐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어측은 처음에는 팜비치 일부 유권자들이 후보 이름이 나비 날개 처럼 좌우 번갈아 나오는 ‘나비’(butterfly) 투표용지 양식 때문에 고어 대신 뷰캐넌을 잘못 찍었다며 선거 무효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으나 이것이 공화당과 언론은 물론 민주당내 일각에서도 비판받자 수개표를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부시측은 고어의 몰표가 나온 4개 카운티만 이 방식으로 집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금지를 요청했다 지는 바람에 자기가 유리한 지역 수개표 요청 기회만 잃게 됐다.

수개표 허용으로 일단은 고어쪽이 한숨 돌리게 됐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를 관장하고 있는 캐더린 해리스 플로리다 주 총무처 장관이 주법에 따라 14일 오후 5시까지 개표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카운티의 선거결과를 인정하기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4개 카운티의 수개표를 이때까지 마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 고어가 표를 더 얻더라도 소용이 없게 된다. 플로리다 주법은 주총무처장관에게 선거후 1주일내 부재자 표를 제외한 선거구 검표를 종결시킬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어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민주당쪽에서는 해리스가 공화당원임을 들어 이 결정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이 소송이 기각될 경우 수개표는 의미가 없어지며 부시의 승리가 확정되게 된다.

플로리다 선거가 법정 공방에 휘말려 누가 이겼는지가 12월 18일까지 가려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이 날은 선거인단이 투표하는 날이다. 연방헌법은 이날까지 선거인단으로 뽑힌 사람들만 모여 투표를 하도록 하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플로리다 선거인 없이도 대통령을 뽑을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고어 260대 부시 246으로 고어가 유리하기 때문에 고어측에서는 소송으로 플로리다 선거인단 발목을 잡아 묶기만 하면 이길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종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고어가 총 유효표에서 부시를 눌렀다는 점도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부시 지지를 표명한 선거인단중 몇 명이 ‘양심에 따라 고어에게 표를 던진다’라고 선언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미국내 50개주중 절반은 아무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으며 나중에 가해봐야 표결 자체를 뒤집을수는 없다.

플로리다 선거 결과나 선거인단 선거 결과에 불복, 대법원까지 상고하는 경우, 혹은 표차가 근소한 뉴멕시코, 오리건, 아이오와, 위스컨신등 여러 주 수개표와 이와 관련된 소송이 쏟아지는 경우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까지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을수도 있다. 그럴 경우 연방헌법이 정한바에 따라 연방 하원의장인 데니스 해스터트(공)가 대통령 직무대리를 맡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변수가 남아 있는 지금 부시, 고어 양후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관해서도 두가지 견해가 엇갈린다. 하나는 부재자 선거 마감일인 오는 금요일(17일) 최종 결과가 나오면 소송을 포기하고 어느 한쪽이 깨끗이 승복, 차기를 노린다는 시나리오다. 이런 용단을 내린 후보는 미국민의 존경을 받는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용기있는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이렇게 해 대통령이 된 상대방은 야당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수밖에 없을 것이며 따라서 향후 4년간 미국은 거국내각 형태로 타협의 정치를 펴나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이렇게 양보한 후보는 당내 강경파로부터 ‘다 이긴 선거를 남줬다’는 비난에 못견뎌 정계를 은퇴할수밖에 없을 거란 관측도 있다. 민주당내 골수 리버럴과 공화당내 극우파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를 놓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양후보가 설사 마음이 있어도 양보할수 없다는 분석이다. 소송에 소송을 거듭해 어느 한쪽이 이기더라도 진 쪽은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원한에 쌓여 4년을 보낼 것이며 그 앙금은 두고두고 차기 대통령을 괴롭힐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느 주장이 맞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돌아가는 것으로 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선거가 마무리 되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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