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닉슨과 고어의 차이점

2000-11-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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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2000년 대선은 40년전, 그러니까 1960년 리처드 닉슨과 존 F. 케네디가 주인공이 돼 펼쳐친 대선과 여러 면에서 아주 흡사하다. 우선 박빙의 접전이라는 게 흡사점의 하나다. 개표과정도, 또 개표결과 후의 정황도 아주 흡사하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개표가 완료되기 전 대세가 케네디로 기운 것으로 보고 축하전화까지 걸었다가 곧바로 취소했다. 간발의 접전 양상이어서 끝까지 가보아야 안다는 닉슨 진영의 주장을 받아들여서였다.

케네디는 불과 11만1,000여표, 0.2% 차이로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리노이와 텍사스에서는 각각 9,000표와 4만6,000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바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간발의 승리를 거둔 이 두 지역에서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는 제보가 잇따른 것이다.
텍사스의 일부 카운트에서는 등록 유권자수보다 더 많은 표가 케네디 지지로 몰렸다. 시카고의 한 투표소에서는 무더기 표가 발견됐다. 여론이 불일 듯 일었다. 닉슨을 동정하는 여론으로 재검 표를 하라는 소리가 높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노했다. 상황은 극히 불투명했다. 여기까지는 2000년 대선과 모든 상황이 거의 일치하듯 흡사하다.


다음날부터 그런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닉슨이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닉슨 진영도 재검 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닉슨은 미국이 분열되는 사태를 우려해 ‘치사한 패배자’가 되기보다는 깨끗한 패배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재개 표를 했다면 미국은 장기간 헌정질서 마비상황을 맞게 되고 대통령은 정통성 위기에 시달렸을 것이다” 닉슨이 훗날 회고록을 통해 밝힌 부문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불명예로 물러난 닉슨이 40년이 지난 오늘 이 때문에 재조명을 받고 있다. ‘명예로운 선택을 한 대정치인’이라는 평가다.

앨 고어에게 (혹은 조지 W. 부시에게) 이 같은 대정치인의 풍모를 기대할 수 있을까. 힘들 것 같다. 세대차 때문이다. 40연전 대권주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세대다. 이들은 위기를 몸소 겪었고 또 동서냉전이라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미국의 안정이 개인의 정치적 야망에 우선한다’는 가치관이 확고한 세대였다는 평이다.

2000년 대권주자들은 이른바 ‘베이비 붐’세대다.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으로 불리는 이 세대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가진 세대다. 거기다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해외적 요인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나오는 전망은 재개표 사태의 현 불안정국은 갈 때까지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제 와서 보니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어든 부시든) 아무도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 칼럼니스트의 개탄선 지적이다. 맞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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