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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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표의 가치>

2000-11-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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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조환동 차장대우

미국 대선이 초유의 관심사다. 1900년대 이후 최대의 접전으로 역사에 남을 이번 대선에서 112년만에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가 표에서 지고도 선거인단에서 이겨 대통령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락 여부가 선거후 10일이나 소요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LA카운티내 유권자 등록과 선거를 총괄하는 LA카운티 등기국의 요청으로 7일 대선에서 투표소 관리소장(Precinct Inspector)으로 봉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날 글렌데일에 위치한 한 투표소를 3명의 백인 여성 자원봉사자를 지휘하면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하고 유권자들의 귀중한 한표 행사를 도왔다.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 미국에서 선거를 관리, 실시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인구 900만, 유권자 398만명으로 단일 선거구역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LA카운티의 경우 이번 선거를 위해 총 4,963개의 투표소를 개설했다. 이들 투표소에서 일한 2만4,000여명은 기자같이 등기국 정식 직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다. 하루 14시간을 봉사한 이들은 대부분 노인과 여성, 흑인들이었다. 한 백인 할머니 자원봉사자는 자신이 1950년부터 빠짐없이 선거때마다 투표소에서 봉사, 이번 선거가 벌써 25번째라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이번 대선을 둘러싼 잡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시민 정신이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임을 새삼 느낄수 있었다.

거동도 힘들지만 서로의 손을 꽉 잡고 투표를 하러온 80대 백인부부, 첫 선거를 하는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딸을 데리고 온 히스패닉 어머니, 또 가게 문을 닫고 8시를 조금 남겨놓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40대 한인 부부등 이날 하루동안 이 투표소에서만 500명의 유권자들이 주권 행사를 해 전국 투표율과 같은 50%의 투표율을 보였다.

본인이 직접 선거 실무를 맡아보니 캘리포니아주에서 만큼은 플로리다주처럼 투표용지에 대한 혼란이나 시비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유권자 등록 기록이 없거나 이사를 했거나 해서 임시 투표용지로 투표를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투표소마다 많은 혼란이 있었으며 만약 캘리포니아주도 재검표를 했다면 이들 투표의 적법성을 놓고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어기고 일반 투표에서 지고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선거인단 제도를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 또 표지용지에 대한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 표준화된 전국 투표용지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 대통령이 300여표 차이로 결정날 전망이다. 만약 이같은 일이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했다면 한인타운내 한인 유권자만으로도 미국 대통령 당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한표의 중요성이 더욱 실감나는 선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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