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번죽은 CNN

2000-1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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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한국에서 있었던 신문오보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어머니가 집앞에서 운전연습하다 자기 딸을 치어죽인 비극적인 사건을 A라는 신문이 가판에서 특종보도했다. 다른 신문사의 사건기자들이 당황했음은 말할것도 없다. 이들은 이리뛰고 저리뛰며 이사건을 확인하려고 애썼으나 확인마저 힘들었다. 이가운데 B신문의 기자가 확인도 안한채 A신문기사를 베껴서 자기신문의 배달판에 보도했다.

그런데 A신문의 기사는 오보였다. 어린이가 좀 다치기는 했지만 죽은것과는 거리가 먼 사건이었다. A신문은 배달판에서 기사를 정정하여 보도했다. B신문기자는 처음에 기사 놓쳐 야단맞고 나중에는 오보를 내 야단 맞았다. 이렇게되면 사람이 두 번 죽게 된다.


현모(賢母)에 치우치면 양처(良妻)되기 힘들고 양처에 너무 치중하면 현모되기 힘든 법이다. 언론도 신속에만 치중하면 정확을 기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 신속과 정확 둘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정확을 택하는 것이 언론의 자세다.

이번 미국대통령선거 보도에서 CNN-TV가 보인 자세는 경거망동 바로 그것이었다. 출구조사를 믿고 초저녁에는 고어당선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했다. "플로리다,펜실배니아,미시건에서 고어는 부시를 눌렀습니다. 고어의 당선은 거의 확실시 됩니다"

이같은 CNN의 보도가 캘리포니아의 유권자들에게 전달된 것은 오후6시께다. 서부지역에선 아직 투표도 안끝났는데 고어당선을 CNN이 읊어대니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자 이번에는 "부시가 플로리다에서 이겼다"면서 그의 당선확인을 네트웍중 제일먼저 보도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표차가 너무 근소해 당선확정발표를 할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CNN은 부시의 당선확정을 보류한다고 또 야단법석을 쳤다. CNN은 이번 선거보도에서 두 번 죽은 셈이다. 한마디로 "청취자들에게 죄송스럽고 잘못되었습니다"라고 사과해야 할 일을 마치 개표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처럼 슬쩍 둘러댔다. CNN의 경솔이 가장 심했지만 다른 TV들도 마찬가지였다. CBS의 앵커 댄 래더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조지 부시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보도했다.

TV들이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우리가 먼저 보도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허영심 때문에 이번선거에서 온 미국국민 그리고 세계가 덩달아 춤추는 격이 되었다. 각국에서 부시에게 축전을 보냈다가 취소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만약 이번 재개표를 둘러싸고 CNN이 또한번 주책을 부린다면 세 번 죽는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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