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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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이란 이름의 마술

2000-1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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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 한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종 결과는 재검표가 끝나야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공화당의 부시가 총선거인단 538표중 271표(아직 개표중인 오리건 제외)를 얻어 정말 아슬아슬하게(최소 270표를 얻어야 당선된다) 다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누구보다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사람은 고어다. 600만명이 표를 던진 플로리다 선거에서 불과 1700표차로 진 것도 억울한데다 전체 유권자 유효표에서 부시보다 20만표나 더 얻고도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된 것이다. 1888년 클리블랜드가 해리슨에게 표에서 이기고 선거에서 진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이런 일은 미국이 아니면 찾아 보기 힘든 기현상이다. 전체 유효표를 모두 계산해 최다 득점자가 당선되거나 아니면 1, 2등이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승부를 가리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만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간접투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대통령 선출방법을 규정한 연방 헌법은 대타협의 산물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 1783년 파리조약을 통해 독립을 공식 인정받은 후 어떤 형태의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여러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파와 중앙정부 권한을 최대한 약화시켜야 한다는 파,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파와 의회가 뽑아야 한다는 파, 인구가 많은 큰 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파와 인구는 적지만 수가 많은 작은 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파가 강력히 맞섰다.

선거인단은 이같이 상반된 주장을 절충하면서 생긴 부산물이다. 다시 말해 의회와 국민의 중간입장에 선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뽑고 선거인단수는 인구비례를 원칙으로 하되 각주 최소 3명을 보장함으로써 작은 주들의 목소리를 높여준 것이다. 정치적 성숙도가 낮은 국민이 직접 뽑는 것보다 식견있는 대리인을 통해 투표를 하는 것이 자질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게 헌법제정자들의 생각이었다. 연방 헌법은 선거인단수만 정하고 선거인단을 어떻게 뽑고 뽑힌 사람이 누구에게 투표하도록 할 것인지는 주정부에 일임하고 있다.

이런 케케묵은 제도를 언제까지 고집할 것이냐는 비판은 과거에도 여러번 제기됐었다. 고어가 다수표를 얻고도 선거에서 질 경우 선거인단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소리가 다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되기는 어렵다. 다수와 소수, 집권자와 국민간의 견제와 균형을 존중하는 ‘건국의 아버지들’의 지혜에 대한 믿음이 아직도 강한데다 현제도하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는 대다수 작은 주들이 자기 발언권을 줄이는 헌법개정에 찬성표를 던질리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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